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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길 어머니

소순희 2023. 10. 5. 23:21

                                                                                  <고남산의 가을/소순희/2019/유화>

 

 

코스모스 길 어머니

 

소순희

                                                                        

어느 하룬들 어머니 잊힌 날 있을까! 추석 무렵이면 더욱 생각나는 어머니, 내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슬픈 추억 하나 있다.

코스모스 핀 길을 보면 더욱 그렇다.

농투성이 되지 말라고 등 떠밀던 봄날, 먼지일던 길로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손 흔들던 46세 어머니.

나는 그렇게 어머니 곁을 떠나 열두 갈래로 뻗은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문득 4학년 가을, 논에서 아부지일을 돕다 퍼질러 앉아 바라 본 고남산.

그 산줄기로 흘러내린 가을빛이 뒷골 밤나무 숲을 노랗게 물들이며 비단결처럼 고울 때 나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 하나를 새겼다.

몇 해가 흘렀다. 차츰 절망이라는 것도 살이 되어 가는 어떤 개인적인 사유의 깊이를 속앓이로 감내해 나갔다.

그것은 유년의 심중에 각인된 고향의 정서를 배신 할 수 없는 한 뜻이라고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어느해 추석 허접한 몰골로 고향에 갔다

어머니는 나를 보시자 주르룩 눈물을 흘리셨다. 옆구리엔 보자기로 덮은 소쿠리를 껴안고 막 마루에 내려놓으시며

후욱 한숨을 내쉰다.

"엄니, 저 왔는데 왜 우셔요? 기쁘지 않으셔요?"

"왜, 안 반갑냐, 내가 요새 좀 아파서 그런다" 힘이 하나도 없으신 어머니는 방앗간에서 쌀가루를 빻아오셨다.

추석에 쓸 떡 가루다.

 

마을에서 면 소재지까지 직선거리로 약 1km쯤 되는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길 양옆으로 코스모스를 심어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양, 빨강 분홍빛 꽃이 가슴 높이의 키로 하늘거렸다.

몇몇 친구와 그 길에서 오랜만의 만남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머니가 걸어오시고 있었다.

"엄니. 어디 가세요?"

"응, 나, 산동 보건소에 가서 주사 한 대 맞고 올란다. 아파서..."

"네, 다녀오세요."

나는 친구들과 히히덕거리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저만큼 어머니가 힘없이 휘적휘적 코스모스길을 걸어 멀어져가고 있었다.

정말 나는 못된 놈이다. 바보 같은 놈이다.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뛰어가지 못한 불효막심한 놈.

어머니와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보건소에 다녀왔으면, 따스하게 손이라도 한 번 잡아 드렸으면

그 때가 이렇게 마음 아프지 않을텐데...지금도 그때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장 소중한 일 하나를 놓치고 난 지금 회한의 아픔으로 다시 끌어안는 내 어머니의 모습, 이제는 다시 그 길에 설 수도 없는,

가슴 한구석이 싸한  내 영혼의 슬픈 추억을 그리는 화가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