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남영역 근처에 작업실을 가졌다. 간혹, 작업실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못한 날은 누군가가 키를 가지고 나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청파동 산 몇 번지의 골목을 산책 하곤했다. 오랜동안 지켜온 누추한 달동네의 골목이 정답게 다가오고 삶의 질곡이 배어 있는 집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봄이면 담 너머로 얼굴을 내미는 라일락꽃 그리고 집마다 제라늄 화분에서 붉은 꽃이 오래토록 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과 6펜스라는 입체 간판을 단 거리를 스케치했다. 숙대 거리는 젊은 이들의 활보로 늘 생기가 넘쳤다. 그곳 거리에 장미 그림을 많이 걸어 둔 카페가 있었는데 커피보다 그림이 좋아 몇 번 들렀다. 그 시절도 이젠 그림속에 정지된 상태로 오래도록 나와 동행하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