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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서

소순희 2006. 10. 14. 23:48

서울의 진산 북한산은 조선조 초기에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렀다. 삼각산이란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삼각산은 양주의 경계에 있다. 일명 화산(華山)이라 하고, 신라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불렀다.

북한산 (北漢山)  837m [국립공원]

이 산은 경성(京城)의 진산으로 동명왕의 아들 온조가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살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운봉 (白雲峰, 지금의 백운대), 인수봉 (仁壽峰), 만경봉 (萬景峰,지금의 만경대)등 세 봉우리가 있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유래를 기록하고 있다. 북한산성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성은 백제 온조왕이 터를 잡았고 그후 개루왕 때 성터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치른 뒤 숙종 37년(1711년)에 시작하여, 6개월 만인 그해 10월에 완공하였다 한다. 북한산성은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정상을 기점으로 서쪽 산자락부터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용암봉,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 용출봉, 의상봉까지 연결하여 쌓은 산성으로 총 길이가 10km에 달한다. 당시 산성에는 14개의 성문을 냈는데, 산성의 정문 격인 대서문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수문, 서암문(시구문), 북문, 백운대를 지나 위문, 용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청수동암문, 대서문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성에는, 부황동암문, 가사동암문이 설치되었다.

현재는 대부분 성문을 복원하였다. 북한산에 수많은 등산로 거미줄 같이 얽혀 있어 산행시 주의를 요하는 곳이다. 북한산의 산행 들머리는 대표적으로 여섯 군데를 꼽고 있다. 우이동 기점, 4.19탑 기점, 정릉 기점, 세검정 기점, 불광동 기점, 구파발 북한산성 기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북한산 일대는 동물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을 이루고 있어 양서류를 비롯하여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이 전지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또한 온화한 기후 때문에 4계절에 걸쳐 다양한 식물 분포를 이루고 있어 참나무, 단풍나무, 진달래, 미선나무 군락 등 아름다운 꽃을 봄부터 가을까지 볼 수 있다.

일찍부터 명산으로 알려진 북한산 일대에는 신라때 창건된 유서깊은 고찰들을 포함하여 현재 15개의 전통 사찰과 100여개의 크고 작은 사찰 및 암자가 있다. 대한 불교 조계종에 속한 도선사는 1,100여년 전 신라말엽의 도승이었던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불법과 천문지리의 심오한 이치를 통달한 도선국사가 명승 요지를 답사하다가 삼각산에 이르러 산세가 절묘하고 청수한 이곳에 사찰을 건립했다고 한다.

수유동쪽 삼각산 줄기에 자리잡고 있는 화계사(華溪寺)는 조선 중종 17년(1522년)에 신월선사가 창건하였으며 그 후 대원군의 시주로 중수되었다.

진관사(津寬寺)는 신라시대의 고찰이면서도 900여년 전인 고려 현종(1009-1031)때에 중창됐으나 그 뒤 난리속에 불타고 또 중수를 거듭해 지금은 대웅전과 불사(佛舍) 두서너채만 남아 있다.-옮긴글

 

 

인수봉에서 자일을타는 클라이머들

 

가을물이 들어가는 만경대

 

노적봉

 

인수봉(810.5m)

 

가운데 부분 태극기펄럭이는곳이 정상 백운대

 

도봉구 상계동, 하계동부분

 

 

 

인수봉에 매달려있는 산악인들 개미처럼 보인다.왼쪽 윗 부분 봉우리가 도봉산.

 

하산은 가운데 계곡의 호랑이굴을 통과해서...  

 

효자리 뒷산에서 본 북한산.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곳 (2006/10/7 사진 소순희)

 

 북한산 인수봉이 보이는 풍경 /4호/소순희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