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2)
들길 가다가
발 멈추고
앞서 걷는 아내의
아기 업은 뒷모습 보니
한 벌 옷 외출복으로 입고
빈 길을 간다
월급타면
겨울 내의 사준다던
내 약속은
물감 하나 더 사는데 그치고
또 봄이 와 버리겠다
겨울은 긴데
아내는 들길 속
점경 인물이 된다.
1986. 소순희.
물거품처럼 사라지던 약속은 켜켜이 내 마음의 밑바닥에 퇴적층처럼 쌓여 있다.
이 약속들은 안 지킨 것이 아니라 못 지켰을 뿐이다.
그런 마음을 이미 알고 있는 아내로서는
그것도 사랑으로 접수해 놓고 묵묵부답으로 넘겨온 날들이었다.
나는 안다. 그 모든 약속들을 ....
큰 아이가 갓난이였을 때 고향에 가게 됐다.
면 소재지 산동에서 버스를 내려 나는 가게에 들러 뭔가를 사고
들가운데로 난 곧은 신작로로 아내는 앞서 걷는데
왈칵 흐려진 눈으로 굴절되어오는
아내의 뒷모습이 점경인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그해 겨울 끝자락에 선 아내를 그리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그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지키지 못한 또 다른 약속일는지...
<독서하는 여인/6호/1995/ 소순희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