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내 옷에서
물감 냄새가 난다고 한다
몸에 서도
마음속에서도
지워 버릴 수 없는
냄새가 나는 것일까
캔바스는 희다
못 다 한 말
아직도 남은 그 말은
그려지지 않고
절망을 잘라내던 무딘 칼은
밥만 그려내고
그려내고 그려내고
적란운 피어나는 하늘 한 모서리
청량한 바람 속에
나 홀로 외롭다
물감 냄새 배어버린 마음 속에
나는 고향의
섬진강 지류를 두르고 산다
그리운 얼굴을 지니고 산다
망초꽃 핀 들녘을 그리며 산다
그로 인하여
옷과 몸에서
마음에서 까지
쉬임 없는 작업을 위한
끈적한 물감 냄새가
주야로 나야 할 일이다.
88/소순희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우기(雨期)처럼 젖어 있는 삶에도
쨍 햇볕 나고 때로 선들바람 불어주기도 한다.
내게서 삶의 냄새를 제하면 무슨 냄새날까. 나만의 독특한 냄새로 한 시대 살고 싶다.
그래서 더러운 입 씻고 더러운 귀 씻고 더러운 눈 씻어 살아가고 싶다.
<해바라기/20호/일본국창전출품작/소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