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소순희 2005. 12. 14. 01:47
 

아직은 이른 부르심으로 마음속에 늘 자리하던 형 한 분을 간 결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오늘 떠나보냈다. 이 땅의 세수51, 그 아픔의 날들을 감당해야할 세상의 인연이 안타깝고 쓰리다. 나를 보고싶다고 해서 달려갔을 때 형은 16층 병동 휠체어에 앉아 형수님과 세 딸이 불러주는 찬송가를 들으며 힘겹게 밖을 보고 있었다. 가야할 때를 아는 것인양 시간앞에 초연히 머물며  살아 있는 감각기관으로 전해오는 그 촌음이 얼마나 마음에 박히셨을까. 세 딸들의 흐느낌 속에서도 어찌 할 수 없는 아빠의 심경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여보, 천국 확신있죠? 죽음도 두렵지 않죠? 거기 가면 하나님도 뵙고, 우리 다시 만나죠?"

"으음..."

형은 형수님의 애절한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고 평안해 보였다. 자꾸만 손짓으로 내게 음료수를 권하는 그 모습에서 정 많은 형의 마음을 읽을수 있음은 이미 그 마음을 아는 터라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내가 형을 좋아하는것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집을 오가며 정을 쌓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밖에서 자주 만나 식사를 하거나 많은 얘기를 나눈 것도 아니다.다만 거부할 수없는 일종의 편안함과 위로가 있는 넉넉한 형으로 일찌기 마음 한 편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과 중학시절 선후배 사이로 마주치면 빙긋 웃어 주었고 내게 부담을 전혀 주지 않았던 그저 듬직한 형이었다. 형이 군에 있을 때 너 댓번 편지를 보냈고 그곳서도 해맑게 웃던 흑백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그 후로 객지로 떠 돌던 형을 수년 동안 못 만났고 인천으로 서울로 직장 따라 갔다는 소식을 고향에서 얻어 듣곤했다.그럴 때마다 나는 형이 잘 되기만을 빌었었다.

 

어느 해 인가 내가 용산 도원동 산동네에서 자취를하며 어렵사리 그림공부를 하고 있을때 형은 후암동 에서 전파사일을 돕고 있었다.그 쯤 형은 미술학원을 소개하고 가끔 강사들에게 모닝 커피를 시켜주곤했다. 그리고 형은  경주로 갔고 나는 다시 홀로 긴 날들의 외로움을 그림의 열정속으로 몰아 넣곤했다.

세월은 빨리도 흘러갔고 한 가정을 이룬  가장으로 우뚝서야 할 때 삶을 의뢰할 수있는 강인한 정신적 지주를 갖지 않으면 나약해 질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나는 주님을 만났고 어느날 형도 주님믿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후일에 들은 이야기지만 형은 경주에 살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 신앙인으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그 때 참 , 반가웠다.

그리곤 인천으로 왔고 나는 연락처를 알아 가끔 전화를 했다.그러면서 처음으로 형수님과 전화상으로 대화를 나눴고 맑고 정다운 목소리로 형에게 잘 어울리는 분임을 직감으로 알았다.

 

병원에 문안을 갔을 때 형수님을 처음 뵈었고 예감대로 형수님은 연약해 보였지만 주님의 사람이었고 형에겐 더 없는 귀한 존재였음을 확신했다. 형이 아픔으로 힘들어 할 때마다 형을  헌신적으로 간호하며 늘 기도로 사시는 형수님때문에 형이 일어설 줄 믿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뭐가 그리 급히 형이 필요해서 쉬이 불러 올리셨는지 나는 그 분의 섭리를 알 지는 못 하지만 우리가 계수할 수 없는 년수를 더 하고 뺄 수는 없지 않는가. 

 

형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연신 "미안해 미안해 잘 못해줘서 미안해...당신 늘 베풀고 퍼주고 그랬쟎아, 이제 우리가 그렇게 살께..." 하며 울음을 삼키는 형수님의 그 간곡한 진실과 아빠의 손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세 딸앞에 교회 성도 누구도 말이 없었다.

 "소 집사님 예배당을 내집처럼 그렇게쓸고 닦고 모두에게 늘 웃음으로 보답 하더니 어찌 이렇게 속히 가시려 하십니까?" 목사님의 그 안타까운 말씀도 이제는 보내드려야 할 때임을 기도로 준비하시고 형은 형수님 품안에서 허공을 또렷이 응시한 채 한 참을 평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확신한다 천국을 본것 아니면, 동행자 천사들의 모습을 본것이라고...

찬송가로 형의 갈 길을 열어주는 성도 여러분에게 둘러 싸여 내게 음료수를 권하던 형이 5시간후  형수님 품안에서 기력이 다해 조용히 잠들 듯 소천하셨다. 혀엉~그 곳은 눈물도 아픔도 이별도 없는 곳이죠. 그래요 우리 다시 만날 때 까지 안녕~

 

나는,  창 밖 먼 연안부두 앞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고향 순구형님께 전화를 하며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림을 어찌할 수 없었다.

 

                                                                                                2005,12.11.소순희

 

 

서산에서.소순희

 

가을 강가에서 (용인)10호 소순희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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