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캔바스 위의 날들)

그림이야기(7)-산 아래 삶(동강)

소순희 2008. 2. 11. 23:01

                                                                                   <산 아래 삶(동강)/50호/소순희작/2007>

 


가을빛은 너무 찬란해서 마음이 가지 않는다.
물빛도 계절에 따라 달라지고 온 산야가 곰삭은 색깔로 포근히 내려앉아 새 울음도 깊이가 있는 11월.
머리를 비워 두어야 하는 찬 바람 이는 시린 초겨울 날은 낭만이고 정신의 부요를 비축하는 계절이다.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 강을 따라 내려오면 반원을 그리며 정선읍을 휘돌아가는 푸른 물줄기가 조양강(朝陽江)이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배산임수형에 속한 정선 읍, 터 잡고 살아온 온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언어와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정선아리랑 한 곡조 못 하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은 뜻 누가 모르랴.
산너머 산이 겹겹이 둘러친 먼 산이 바이올렛그레이 색깔로 눅진이 깔려 예쁘고 성스럽다.
골 깊은 산허리를 깍아 만든 솔치재 오름에서 바라보면 조양강을 끼고 산자락에 옹기종기 자리 잡고

밭농사 지으며 살아가는 마을이 초겨울 짧은 하루를 해바라기하며 평화롭게 나룻나룻 졸고 있다.
저 마을에서 한 달포쯤 그림 그리며 살았으면...
정선읍 에서 서남쪽으로 한 시오리쯤 가면 조양강 끝자락에 광하라는 지명의 평지가 눈에 들고 빛바랜 고추밭 너머로 늙은 아름드리 밤나무가 내어줄 것 다 내어 주고 초겨울 볕아래 강물을 바라고 의연히 서서 물속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광하 에서부터 백두대간의 허리를 휘감고 흐르는 것이 그 유명한 동강이다.
정부에서 동강댐을 막는다고 발표하자 환경주의자들과 강 하류 지역민들은 결사 반대로 투쟁했고 마침내 동강댐은백지화 되었다.
동강을 따라 몇천 년 침식되어온 회색빛 혹은 붉은 연보라빛 깍아 지른 바위절벽 아래로 간신히

빗겨 설 수 있는 자동찻길을 따라 동강 중류로 가다 보면 간간히 몇 채의 집들이 산비탈에

미끄러지듯 서 있다.
그리고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이 비리디언틴트 색깔로 푸르게 산그늘을 퍼담아 안고 있다.
때론 거칠고 세찬 여울은 불호령을 내리듯 맑게 흐르는 것이 너희가 나를 가둘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 같다.
대개 외지인이 땅 주인이 되어 수몰되면 보상 받으려는 심산으로 유실수를 심었다.

가꾸지 않아도 꽃 피고 열매 맺어 그 사명 다 하지만 열매들은 초겨울 서리에 푹 삶아진 채

애처롭게 매달려있다. 슬픈 현실이다.

11월은 정녕 한 해 동안 마음에 채워진 부유나 혹은 허기를 가늠하며 정리하는 시간을 부여해 주는 달이지 않을까. 그대 하던 일 잠시 뒤로 미루고 떠나라. 바람이 차가워도 좋은 건 다시 힘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수해에 함몰된 도로를 운전 하느라 고생한 김부민, 윤영숙, 김경희 화우께 감사하며 여정을 나누고 싶다.
                                                                                                 <2002.11.19./소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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