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암리의 가을/4호/소순희작2009>
여름 장마와 노염이 물러가고 가을빛이 스며들 무렵이면 산과 들엔 모든 게 풍족하다.
내가 초등학교 2~3학년쯤 엄니는 내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아야, 산에가서 파리버섯 하나 따오니라 잉~" 그 시절만 해도 시골집엔 파리가 새까맣게 붙어살았다.
벽지엔 원래 무늬인지 모를 만큼 파리똥이 은하수처럼 찍혀있었다.
낮잠이라도 잘라치면 입가와 눈가를 파리가 기어 다녀 괴롭혔다.
밥상에도 같이 먹자고 달려드는 파리를 휘휘 손을 저어 쫓아보지만 계속 떼거리로 달려드는
파리를 다 쫓지는 못했다. 가끔은 국에도 파리가 빠져 죽었지만 건져내고 밥을 먹어야 했다.
뒷동산으로 올라가 이리저리 둘러보면 하얀 버섯이 작은 소나무 밑에 우산처럼 솟아있었다.
그게 파리버섯이라고 누나가 가르쳐준 후로는 내가 심부름을 해야 했다.
버섯을 따 오면 엄니는 밥풀과 버섯을 으깨어 접시에 담아두고 밭으로 나가셨다.
파리가 한 두 마리 날아들어 밥풀과 독버섯을 으깨놓은 것에 앉아 입에서 나온 혀끝으로 톡톡 쪼듯 빨아 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알딸딸한 모습으로 뻘쭘히 서서 날개를 뒷발로 썩썩 훔치고 얼굴을 앞발로 두어 번 씻어낸 후
벌러덩 누워 하늘을 향해 여섯 개 발을 버둥거리다 죽어갔다.
점심 먹으러 밭에서 돌아오면 죽은 파리가 하얀접시 가에 새까맣게 쌓여있었다.
그러니 위생적으로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겠는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버섯은 1,500여종 이라 한다. 그 중에 독버섯은 90여 종이며
한 개만 먹어도 죽음에 이르는 독우산광대버섯도 있다 하니 함부로 먹어선 위험하다 .
파리버섯도 파리가 죽을 정도면 인간에게도 치명적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자연은 인간에게 독과 약을 제공하지만 지혜롭게 가려 쓸 일은 이제 인간의 몫이다.
2014/소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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