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허리는 온통 메밀 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여름 봉평장에서 재미를 보지 못 한 허생원과 조선달,동이 세 사람의 장꾼이 이튿날 열릴 대화장을 기대하며
메밀꽃이 허연 달빛 내린 길을 걷는 대목이 참 정겹다.
어렵사리 밭작물로 한 시대의 삶을 갈구 했던 한 많은 우리네 삶도 시대의 흐름 속에 묻혀 진지 오래다.
이제는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해진 그 곳 평창이 관광 자원이 되어 많은 도회지
사람들의 발길을 서두르게 한다니 아이러니하다.
내게도 소상히 알고 있는 서럽고도 고운 추억 하나 가슴에 남아 해마다 이 때 쯤이면 소롯이 살아와 마음을 적셔준다.
어머니와 큰누님이 아버지 대신 논밭으로 나가 별바라기가 되어 돌아오고
내 중학 시절 마지막 여름은 먹장구름 하나 떠오지 않고 맨 하늘에 가뭄만 계속 되었다.
쟁기로 갈아 엎어놓은 논에선 푸석푸석 흙먼지가 일었고 독새풀이 무수히 움을 틔우고 있었다.
논밭을 묵히는 건 농부로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 이었을까,
어머니는 세상 근심 다 짊어진 얼굴을 하고 끝내 모내기를 하지 못 한 산옆 가랫들 논에 모 대신 메밀을 심었다.
물길 좋은 들녘 에서는 벼들이 고개를 숙일 즈음
천수답인 우리 논엔 눈 시리도록 허연 메밀꽃이 유달리 고왔고 늦여름 더위 속에 서도 가만히 앉아 꽃 속에 숨어들면
꼭 가슴께 그 높이 에서 흐드러지게 꽃이 피었고 쌀 한 톨이 더 귀한 그때
나는 어머니와 누님의 근심이나 아픔도 모른채 마냥 흐뭇해 했다.
붉은 꽃대궁이와 하얀꽃과 파란잎과 나폴 거리던 흰 나비떼들이 참 곱다고 생각했던 건
우리 식구들중 나만 갖는 유일한 감정 이었는지도 모른다.
해질녘 이면 서늘 하도록 흰꽃이 더욱 선연히 눈에 들었고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메밀밭 길을 지나가곤 했다.
그해 겨울 누님은 산너머 운봉(雲峰)으로 울면서 시집을 갔고 나는 몹시도 외로워지기 시작 했으며 부쩍 말수가 줄었다.
사춘기가 왔던 걸까, 어머니의 잔소리는 더욱 늘어 났고 그게 몹시도 싫었다.
그러면서 내 자신의 삶과 존재를 자연 속에서 찾으려는 비교적 긍정적 사고로 산이며 들을 쏘다녔다.
다행히도 그런 자연 환경이 단순하고 소극적인 나에게 감성을 심어주고 조금씩 식견이 자라게 했던 것이다.
지금 와 생각하면 예술가 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 앞에 내가 순연이 동화 되었고 그 분의 섭리에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나는 이런 고향과 산아래 삶과 산에 엉겨있는 한 때의 삶과 추억이 있으므로 나에겐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모르고 볼 때는 내 인생과 별 인연 없는 땅 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의 땅으로 가슴 깊이 다가온다."는
어느 분의 말씀처럼 나도 그렇게 이 땅 구석구석을 가슴으로 보고 싶다.
그리고 올 겨울엔 시원한 메~~~밀묵 한 번 실컷 먹어 봐야겠다.
글,소순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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