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J에게(63 )-설악 권금성에서

소순희 2015. 8. 20. 00:11

 

                                                                                                        <수령 800년 무학송>

 

                                                                                            <권금성에서 바라 본 울산바위>

 


J.설악은 요지부동으로 이 자리에 있지만 나는 좀처럼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삼척동자도 여기 발자국을 찍는데 뒤늦은 산행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에 와서 바라본 산이 눈에 들기 때문입니다. 어쭙잖게 글을 쓴다는 것이 더 부끄럽지만 마음에 깊이 박힌 산의 웅장함과 너그러움에 나는 먼지처럼 소멸할 존재란 걸 알기 때문에 한발 한발이 더 소중하고값진 게 아니겠습니까?

8월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온 천지에 수은주는 연일 32도를 오르내립니다.

염천의 폭염도 산 아래 사람들과 산 위의 사람들에겐 다른 의미로 기록되는 것은 우뚝 솟아오른

암벽의 위용이나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서늘하게 전해지는 시각의 전달 방식에서 비롯된

느낌이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비로소라는 말이 실감 나는 것은 이제 심안을 열기 때문이라고 자신에게 전합니다. 늦은 가을쯤엔 흰 머리를 든 울산바위에 마음을 뉘일 생각입니다.

멀리 속초 앞바다가 검은 수평을 그은 날에 눈높이를 맞추며 나는 다시 설악에 오를 것입니다.

능선마다 골골마다 전설과 감탄을 새겨놓는 산의 깊이를 겸허히 받으며 신의 창조에 머리 숙입니다.


J.바라보면 더 덜어낼 아무것도 없고 붙여야 할 아무것도 없는 절제의 미를 최대한 끌어낸 게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름은 생성되고 해체되는 과정에서 변화무쌍함으로 산과의 조화를 이룬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가끔은 산의 날카로움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역할로 대기 원근법을 이뤄내며 숨은 그림을 찾아내는 호사를 누립니다.

입추 지난 어름의 끝자락에서 짚어보는 절기는 인간의 절실한 바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 무렵이면 풀벌레 소리 노염을 덜어냅니다. 이 여름 건강히 건너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리운이여 안녕. 8/12 설악 권금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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