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캔바스 위의 날들)

박수근 ㅡ영혼의 울림

소순희 2016. 4. 1. 23:01


                                                       나무와 두 여인

 

귀로

대화

아기업은소녀




2009/8월 여름 휴가 겸 교회 수련회를 양구로 떠났다.

한낮엔 산 중턱에 지어진 농원의 지붕 높은 집에서 쉬고 오후 녘엔 양구 강가에 가서 멱도 감고

물고기도 잡으며 여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오전 오후 한 번씩 예배도 드리고 밤엔 콩트와 퀴즈. 찬양 경연도 했다.

아침나절 나는 조용히 쉬고 있는 일행을 두고 양구 작은 마을에 있는 박수근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감상할 요량으로 혼자서 차를 몰았다.

푸르다 못해 검푸른 산골의 숲과 마을은 여름내 지친 모습으로 실록에 묻혀있다.

미술관 앞마당에 주차 하고 들어서려는 순간 아차! 이게 뭐람 나는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복장을 하고 무심코 달려왔던 게 아닌가.

순간 안 돼! 이건 예의가 아니지....적어도 박수근 화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미술인으로써 ...

나는 외관만 둘러보고 다음에 다시 와야 할 것 같아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 산골 양구 정림리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미술계에 거목으로 자취를 남긴 화백의 조용한 성품과

가난 중에도 열정을 잃지 않는 그 정신을 닮고 싶다.

학연.지연이 깊게 공존하며 피폐해진 예술계를 말없이 묵묵히 살아내며 독학으로 개성 강한

그림 세계를 구축한 멋과 내면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화백의 작품에 조용한 안식을 얻는다.

가난 속에서도 명리에 집착하지 않는 그분의 인생 여정은 인간적 소박함을 기조로 튼튼하게 다듬어진

예술혼의 길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삶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화강암 같은 질박한 마티에르는 유년의 고향에서 보아왔던 시각적 부드러운 효과와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쑥버무리 같은 느낌이 들어 미각의 소욕을 느끼게 한다.

나목과 여인이 등장한 그림 속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일상과 누이의 아기 업은 모습을 보며 유년의 기억 속을 유영하지 않을 수 없다.

평면에 도드라진 임패스토기법은 느린 건조의 이유로 더 많은 밑그림의 수련을 겪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그 화면 속 나목 아래 한 명의 행인이 되어 갈 길을 가고 있다.

그분의 쓸쓸한 풍경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동화되는 심리적 안정이 회화가 주는 힘일 것이다.

                                                                                

                                                                                                                     소순희   


박수근-가난한 이의 가난한 그림


아래 글은 <갤러리 현대  박명자 회장>의 회고문이다.    

유화 ‘굴비’(1962). “선생님은 ‘미스 박 시집갈 때 내가 그림 한 점 선물하지’ 하셨는데,
내 결혼 한 해 전에 돌아가셨다. 결혼식 날 부인 김복순 여사가 선물이라며 보자기에 싼 꾸러미를 가져왔다.
굴비 두 마리가 그려진 유화였다.
철이 없을 때여서 ‘선생님이 살아계셨더라면 나 좋아하는 인물화를 주셨을 텐데’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70년 2만5000원에 팔았다. 그런데 피카소도 아니고 그림 값이 해마다 열 배씩은 오르더라.
2002년 5월 박수근이 ‘이달의 문화 인물’로 지정되면서 회고전을 열며 ‘굴비’를 2억5000만 원에 되샀다.
32년 만에 1만 배, 기가 막힌 가격이었다. 2년 뒤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했다. 그게 선생님께 내 할 도리다 싶었다.”

나는 약속을 지킨 박수근 화백이나, 선물로 준 그림을 팔고

도리가 아니다 싶어 다시 많은 돈을 주고 구입해 박수근 미술관에 기증한 분의 아름답고 의리있는 마음에 감동한다. 

 


   박수근(191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