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소순희 2023. 7. 26. 23:12

 

                      쥐

 

                                                     소순희

 

"아. 그 잿더미에서 불이 붙은 거 아녀?"

"몰라 아척에 재에다가 물 뿌리고 갔다 놓았당께"

용식이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죄인처럼 조아렸다.

타다 남은 헛간 기둥과 서까래가 숯덩이로 검게 남아 있는데 실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아, 글쎄 안채에 엥겨 붙었으면 큰일 날 뻔했구먼"

땀이 흐른 어른들 얼굴엔 불을 끄느라 검은 검댕이 묻은 코끝과 볼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한쪽에선 쇠스랑으로 초가지붕을 찍어 걷어 내고 물을 비워 낸 바케스가 휙휙 마당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대여섯 명의 어른들이 타오르는 불길을 간신히 잡았다.

용식이네 마당 북쪽으로 지어진 헛간이 반 이상 타 버렸다.

이젠 안심이란 듯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거리는 마을 어른들의 어깨 너머로 겨울 노을이 스러지고 있었다.

 

눈이 녹을 때쯤 남아 있는 돌담 그늘 밑구녁엔 뻔질나게 드나든 쥐 발자국으로 눈 위가 더럽혀져 있어 금새 쥐구멍이라는 걸 알았다.

숨죽여 지켜보고 있으면 머루알 같은 눈깔과, 불그스레한 코를 발름거리며 쥐가 밖의 동정을 살폈다.

인기척이 나면 휙 돌아서는 쥐의 엉덩이와 꼬리가 구멍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발름거리는 코가 보이고 방정맞은 수염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그 얄미운 낯바대기를 내밀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쪼르르 나와 짚 더미 속에서 뭔가를 물고 들락날락 했다.

"저놈의 쥐를 잡아야헌디 어뜩게 잡을 수 있을까?"

"좋은 수가 있다. 올가미를 만드는 거야!"

가는 철사로 모기장을 쳐 놓은 문에서 한 가닥 날 줄을 빼내 쥐구멍 크기의 올가미를 만들었다.

나뭇가지에 단단히 묶어 구멍 입구에 박아 놓고 기다렸지만, 한동안 낯선 물체가 있는 걸 알고 경계가 심한 쥐는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오후무렵 찍찍거리며 발버둥을 치는 쥐의 목에 철삿줄이 조여지고 나뭇가지를 빼들자 쥐가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렸다.

배의 하얀 털 과는 달리 잿빛 등이 반질거렸다. 몸에 비해 유난히 작은 연분홍 빛 쥐 발이 겨울이라 시려 보였다.

시골 아이들에겐 쥐마저 놀이감이 된 시절이었으니  참,어지간히 어린이들에게 취약한 농촌 현실이었다.

집 벽을 갉아대고 병균을 옮겨오고 곡식을 훔쳐 먹는 백해무익 쥐의 존재를 농부들은 못마땅해 했다.

추운 한 겨울 아침 돼지의 큰 귀 끝이 파여 나가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보았다. 밤새 쥐가 돼지 귀를 갉아 먹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쥐를 먹이 삼는 구렁이를 집 지켜주는 영물이라 성스럽게 여기며 죽이지 못하게했다.

가끔은 외양간 짚 풀더미 속에 낱알을 찾아 먹던 쥐를 소가 밟거나 깔아뭉개 쥐가 죽은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

쥐의 임신 기간은 25일쯤이며 4~10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출산 횟수는 암컷의 나이에 따라 한 해에  3~4회를 출산하며 새끼는 생후 80일이면 교미를 해 번식 한다.

 

사람은 죄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 고로 그와 함께 해악을 끼치는 것에는 응징하는 잔인성이 자연스레 길러졌는지도 모른다.

잡힌 쥐를 용식이네 마당에 놓고 누군가가  화형을 하자고 제의 했다.

남폿불을 켜고 남아 있던 석유를 쥐 몸에 붓고 성냥을 그어댔다.

스윽 불이 붙어 가자 쥐는 마당 가운데서 펄펄 뛰다가 갑자기 헛간으로 뛰어 들어버렸다.

마침 쌓아 놓은 짚더미에 불이 붙고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우리는 겁이 나서 도망쳤고, 이웃 어른들이 물을 담은 바케스를 들고 달려온 건 삽시간이었다.

물을 나르느라 정신없는 어른들 과는 달리 나와 용식이와 순성이 휴억이 휴갑이는 그 상황의 제공자들이지만 암묵적 결단으로 누구도 입 밖에 그 일을 꺼내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틈을 타 마당과 돌담을 사이에 둔 류씨 제각 담 밑으로 돌아와서 불 끄는 것을 바라보며 불이 빨리 잡히기를 맘 조리며 고대했다.

잿불로 인해 화재가 난 거로 일달락 지어진 그날은 짧은 겨울 해를 넘기며 저물어 갔다.

다행히 헛간만 반이 타고 불이 무섭다는 교훈만 남긴 채 차츰 그 일은 우리들 기억 속에서도 희미해져 갔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사업을 하는 여섯 살  아래 휴갑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용식이 성네 불낸 것 나는 다 알고 있어..."

수화기를 통해 전해오는 그의 말투에선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는 확신과

지금은 공소시효가 지나 효력을 잃은 숨겨야 할 일도 아니란 걸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가 일곱 살쯤이었는데 소상히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 또렷이 각인된 유년 시절의 아픔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산 밑 그 집도, 오래 묵은 기와지붕에 와송이 자라던 제각의 대청 마루에서 놀던 유년의 날도 흔적 없이 헐린 집과 함께 아득한 기억뿐이다.

그때 어른들도 고인이 되어 정지된 표정들이 생각 속을 스칠 뿐, 흰머리처럼 야윈 추억을

다시는 못올 그 시절로 되돌리지만, 생태계 하위를 차지하며 번성하는 쥐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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