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유년의 달빛 내린 겨울밤 인상

소순희 2003. 10. 9. 00:42


겨울밤에 어머니가 마실 다녀오시면 치마 폭에선 찬 바람 냄새가 나곤 했다.
얼마를 잤을까.깊은 밤 오줌마려워 마당에 내려서면 온 천지가 허연 달빛 아래 젖어있었다.
텃밭에 볼일을 보면서 올려다본 하늘엔 별들이 또렷이 박혀 시리도록 빛나고
마당귀에 서 있던 감나무 그림자가 그물처럼 펼쳐져 있었고
달은 하늘 서쪽 감나무가지에 곱게도 걸려있었다.
그 밤에 목말라 부엌 동이에 받아둔 냉수를 한 바가지 떠내와 달빛 함께 들이키면
온 내장이 서늘하여 몸서리가 쳐졌다.

집 앞에 흐르는 산개울(도랑) 얼음장 밑으로 온 밤내 쪼르륵 쪼르륵
물소리 들리던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갔고 잠도 오지 않는 밤엔 바람결에
사각이던 뒤꼍 대나무밭이 유달리 무서워지곤 했다.
말똥말똥 뜬 눈으로 무슨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지 ...
오래도록 잠이 들지 않으면 무거운 솜이불을 이마까지 뒤집어써 보기도 했다.
그렇게 뒤척이다 늦은 새벽잠이 들었고 천정에서 콩콩콩 뛰던 쥐들도
마른 건초더미 속에서 늦은 잠에 떨어지곤 했을 것이다.

바람냄새를 치마폭에 안고 오신 어머니는 가끔
생고구마나 뒤란 땅속에 묻어놓은 무를 깎아주시곤 했다.
이 시리도록 시원하던 무맛과 입안 가득 고여오던 고구마의 달고 시원한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내 유년의 겨울은 티 없이 맑게 깊어만 갔다.

겨울 어느 날 10P 소순희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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