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화실에서 짐을 싸 들고 돌아가던 날 푸른 숲길로 여름이 눅진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저 개인전 하려고요."
우리는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았다. 어쩌면 변화무쌍한 시대를 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살고있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이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청량한 바람처럼 불어오는 건
자신의 속내를 진솔하게 풀어내는 작가적 의식으로
서정적이든 개성적이든 표현하려는 의식이 아닐까 한다.
마남선의 어린 시절은 눈만 뜨면 푸른 동해가 눈에 들고
돌아서면 설악이 꿈결처럼 다가서는 속초의 아바이마을에서
뼈가 굵고 감성이 자랐다.
작은 섬을 목적지로 두고 바다를 헤엄치는 어린시절의 겁없던 조무래기들 사이에서
마남선은 제법 남아들을 제치고 수영을 곧잘 했다.
그의 그런 이면엔 마음에 늘 도사리고 있던 표현 이전의 서정적 사상들이 꿈틀거려
초등학교 때는 학교대표로 그림 실기 대회를 나갔고
곧잘 수상을 해서 교장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지만
부모로부터는 가시나가 그림 그려서 뭐하냐고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 재능이나 능력 따윈
아랑곳없이 가장 평범한 삶이나 꿈꾸던 그야말로 부모님의 뜻에 순종하면
가장 확실한 근거로 모범생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그리고 시대가 변했다.
물질적 이윤만을 추구하는 비합리적 사고로 세상의 인정이 갈급할 즈음
정신의 황폐로 고갈된 정서를 다시 회복하고자 눈을 들어
풍요한 삶의 연결고리로 작품을 해보려는 문화의 질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일련의 소질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이 열려왔다.
수리산 아래 살면서 들며 나며 사계의 변화를 바라보는 그는 음영 깊은 골짜기와
푸르게 변해가는 산자락과 고운 비단결 같던 가을 산 그리고 겨울 설산을 바라보며
마음에 도사리던 꿈을 과감하게 펼쳐보이려 다시 붓을 잡았고
수없이 반복되는 붓질 속에 고립되어 철저한 투쟁의 연속으로 살아왔다.
<아프다. 정말 아프다…
며칠을 붓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하얀 캔버스 앞에 앉아
내가 내가 아닌듯 버텨내고 있었다.
목울대를 옭아매는 울음이 복받치지만 울음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회로가 얽혀버린 나의 뇌리를 짓밟고 가는
그의 죽음 앞에서 그림은 무슨 그림이냐고 되뇌며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온종일 억장 무너지는 피울음으로 살았다.
그리고 며칠은 내 주변에 술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잊어버리자고 술기운으로 잊어버리자고…
그럴수록 더 애끓게 다가서는 유난히 정이 많던 내 여동생.
심사숙고 끝에 개인전을 한다고 하자 너무너무 기뻐하던 그가
잠자듯 그렇게 서둘러 가버렸다. 바보. 바보.
수리산 봉우리 아래로 가을 빛이 선연히 눈에 든다.
다시 시작하자. 그의 기뻐하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또 눈물이 난다. 그의 얼굴이 그림마다 각인되고
문을 열고 들어올것만 같아 자꾸만 현관문으로 눈길이 간다. 해보자.
그런 후 이 질긴 인연의 끈을 저 가을 속으로 자유롭게 풀어주고
내 평생 가슴에 묻어야 할 것 그림으로만 남겨야 할 일이다.>
그의 독백처럼 그는 여자형제로서는 단 하나뿐인 여동생을 보내고
몹시도 아파했다.
한 줌 재로 돌아간 동생이 보고파 초겨울이 드는 설악에 갔더니
아직도 그 자리에 하얗게 남아있는 동생의 체분을
추울까봐 낙엽으로 덮어주며 그는 또 오열했고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포기하고 붓을 꺾어버리고 싶다고 몇 번이나 얘기를 하며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울먹거리는 것이 목까지 올라와 있었고
애써 참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만큼 그는 아파했고
가슴에 아픔 하나를 그림마다 깊이 각인시켜놓고 있었다.
아니, 그 전에 또 오빠 한 분을 먼저 보냈다.
그러면서 한동안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고 했다.
비오고 천둥 치는 어느 이른 새벽
창문을 열고 우두커니 밖을 내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 돌아서곤 했다.
꼭, 밖에 오빠가 비를 맞고 서있는 것 같아 들어오라고 문을 열고 서있었던 것이었다.
그만큼 그의 마음엔 가까운 혈육을 보냈고 어두운 기억을 소멸하려는듯 그의 그림은 밝다.
따스한 색조가 주조를 이루는 자연주의적 감성으로 화면을 밀도 있게 채워가며 그려내는 점에서
타성에 젖은 고집스러운 그의 진부성이 두렵지만
조금은 보수적·전통성을 갈구하는 그의 그림에서 어쩌면 성실한 회화적 가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그의 첫 개인전을 열면서 연륜만큼 성숙해지고
자연을 재해석함에 있어서 더욱 진솔한 감정의 이입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린다는 자체에서 희망을 잃거나 게을러 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04.1 서양화가 소순희 <마남선의 개인전에 부쳐>
소나무가 있는 언덕 6F 소순희 畵
'추억그리고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 백령도 (0) | 2004.06.18 |
---|---|
나.사는 모습. (0) | 2004.05.19 |
어린 날에 뿌려진 복음 (0) | 2004.01.01 |
나 다시 돌아갈래~ (0) | 2003.12.13 |
흑산도의 10월 (0) | 2003.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