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J에게(21)-열차 안의 아름다운 동행

소순희 2007. 2. 7. 01:44

 

                                                                                                                      < 또리와 리비>

 J.

열차가 안양역을 벗어나면서부터 시야에 들어오는 산이며 지붕낮은 집들 그리고 아파트와

철로변의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들이 흐르며 사라지는 건 잠깐입니다.

늘 그랫듯이 아침 출근 시간이면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로 발 옮겨 딛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더러는 졸고 무표정한 얼굴들이 저녁 퇴근시간과는 사뭇 다릅니다.

각 처소로 향한 아침시간은 오늘 해야할 일들에 대한 무거움 혹은 기대에 찬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현대인이라는 몇 가지 조항을 숙지하듯 타인에게 결코 자신을 내어 보이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개인주의 성향이 깊다는 걸 느낍니다.

앵무새 같은 안내방송은 여전히 귓가를 괴롭히는데 무심하게 흘려듣습니다.

 

"아유~괜찮어유."

"무거워 보이는데 내가 좀 받쳐드릴게요."

"아녀요,곧 내려요."

"어유, 이렇게무거운데...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기냥..." 하고 겸언쩍게 웃으십니다.

"자, 허리 좀 펴셔요."

"고마워유, 요즘 젊은 사람덜은 나 같은 늙은이 사람 취급도 안 혀요. 고마워어유"

"........"

 

그 비좁은 열차 안에서 굽은 허리로 배낭을 멘 7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할머니와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의 대화입니다.

누가 보아도 무거워 보이는 짐을 지고 이 복잡한 시간에 할머니는 어디로 가시는 걸까요?

신도림역에서 내리는 걸로 보아 그곳 어디쯤에서 좌판행상을 하시지 않나 생각됩니다.

늙어 가는 것도 서러운데... 동병상련일까요? 그 할머니의 무거운 짐을 뒤에서 내릴 때까지

부축해주며 안쓰러워 하는 분도 할머니임은 분명합니다.

나이 들면서 소일거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평생을 시류에 맞게 적응해 왔을

그 할머니의 애처로운 삶이 어쩌면 내 어머니의 삶과 동질감이 있음에 맘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노동은 가장 신성한 삶의 한 부분 이라지만 그 무거움과 연세에 비례하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입니다.

옷을 잘 차려입고 노약자석에 앉아 일찍 탑골공원이나 종로 콜라텍으로 출근(?) 하시는

노인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아직은 복지국가가 되지 못 한 나라의 이면을 보며

씁쓸한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서러워라 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송강 정철

 

세월은 젊음을 그대로 유지시켜주진 않습니다. 다만 젊고 아름다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기를

가르쳐 주는 몽학선생임을 깨달아야할 일입니다.

 

                                                                             그리운이여 안녕 07소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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