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내, 삶의 한 부분에서...

소순희 2004. 12. 17. 01:25

어쩜 이 좋은 가을날 하필이면 하늘이 높고 깊은 날 선생님은
그렇게 먼 길로 떠났을까요..

 

이 땅이 서러워 못 살겠다고 떠난 미국 땅도 모국의 자유 앞엔 더운 바람 속 시간들이었다죠.

그러나 속박당하는 문화론에 대등한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던 선생님의 용기앞에

결코 주눅 든 변방의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국의 산하가 그리워 속히 회유 할 줄 알았지만 흰 눈 내리고 꽃 지고 녹음 무성하던

이태를 지나고 인천 어딘가의 삼류 아파트에 병약한 몸으로 귀국하셨지요.

선생님, 기회주의에 걸맞지 않는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힌 채 흐린 하늘같은 날들이 그리도 좋던가요?


아! 아직은 아닌데...
플라타너스 넓은 잎 그림자가 조용히 내리는 낡은 아파트 마당에
풀꽃들이 피어 있었고 선생님은 그 좋은 날 침대에 누워 야윈 얼굴로 손을 잡고 나를 반기며

그리도 좋아하시더니 이주일 뒤 그림 몇 점 남기고 싸늘히 돌아서 갔습니다.
어쩌면 허무인지도 모를 페시미즘의 한 시대를 살고 있음이 사람 사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었을 삶이었는데 어쩌자고 처절한 한 생을
마지막 붓질 한 번으로 그으셨을까...
슬픈 당신의 삶에 누구의 이해나 동정도 값 싼 수식어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고약한 병마의 버림 앞에 어쩌면 더 이상 고뇌 없이 잘 가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게 고운 존재로만 남아있는 나약한 선생님은 이제 없습니다.
다만 마음속에 언제까지나 존재하겠지요. 그것마저 잊혀 진다면 슬픈 인연이니까요.

 

"또 놀러와, 언제올래? 응? "

"네 다음주에 올께요." 이것이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이야...

 

선생님 안녕히...

                                                                           2002.10

 

 

 

 

                                                                                   <김규봉 선생님작3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