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을 위하여 소순희 사랑아 저 가을빛 산 넘어 오시거든 빈 잔에 채워지는 노을빛을 보아라 황혼이 아름다운 건 색채뿐 아니라 지나 온 여정의 자취려니 우리가 창 넓은 찻집에서 힘겹게 내리는 플라타너스의 잎새를 보며 지상에 누운 저 순간 숨죽인 허무의 근원을 한 철 기대어 산 죄로 개명해 놓고 말없이 찻잔만 만지작거렸지 산다는 건 누군가에게 나를 맡겨 두는 것 잠시 빌려 쓴 이 땅의 모든 피조물에 기대어 사는 일 그리하여 견고하게 직조된 고집의 속성을 버리는 연습으로 황혼의 아름다운 길 걷기 위해서이니 가을에는 그리 깊게 살아 볼 일이다. 2008 <창포동인제3집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