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 사이
가을볕 하나 역사 계단을 통통통 내려오다
풀죽은 더운 바람과 만나 오랜만이라고
악수를 청한다 어디 가는 길이야고 묻자
저, 남쪽 나라로 가야 한다고 서둘러 돌아서는
바람의 뒷덜미에 노루 꼬리만한 여름이 붙어 있다
운 좋게 열차를 얻어 탄 바람이 실려가고
바람이 벗어 두고 간 지난여름 이야기 몇 개가
플랫폼 간이 의자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한 철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해
기적을 울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인내 아닌가
등 떠미는 일 없어도 안녕이라고
서슴없이 말 하는 계절의 흰 이마가 서럽다.
소순희
<창포동인제3집수록>
<대지-그, 눈/20호/소순희작/대한민국회화제출품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