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내린 눈
몽유병 앓는 도시의 집들이
어둠 지우는 가로등 밑에 아득하다
수직이 기운 전신주에
위태롭게 매달린 봄눈
그 빛에 밤이 희다
한 뼘이나 쌓이는 철 잃은 낙하
밤은 눈물을 만들지 않고
이쯤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로
어느덧 봄이 온다
사는일 홀로 피고 지는 일일진대
심각한 그 무엇으로 힘겨워하느냐
겨울을 지탱해 준
기억 안의 봄눈 추억은
땅속 잠 깨우는 온유의 목 축임으로
존재하거늘 어인 일로
쌓이는 눈을 두려워하랴
소순희
<창포동인제3집수록>
<1953년작/Roman Holiday중에서/소순희찍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