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순희작/10호>
안양에 와서
안양에 내려온 후 안개와 친숙해졌다
경수산업도로를 점령한 무량의 흐름 앞에 가끔은 깊이 숨어들고 싶었다
차츰 산을 드러내는 그 부드러운 유영으로 촉촉이 젖은 산이며 나무들이
때깔 고운 시처럼 서 있을 때 나는 창밖의 풍경을 무아지경인 듯 바라보았다.
유폐된 내 삶의 한 부분이 가지런히 드러나는 회개의 날에
도처에 놓여 있는 올무는 나를 옭아매려 달려들었다
불혹의 등고선을 짚어오며 시린 산 하나를 넘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생의 종반, 그 유한의 날을 신께 맡겨 자유를 얻을까
안개속 같은 배회의 근원을 벗어나 아직은 살 만한 곳이라고 방언처럼 중얼거리며
세상에 직립하는 필연의 의식, 그건 나로부터의 고독한 해방이었다.
2013/소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