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살 무렵
서둘러 전화를 끊는 그의 목소리 끝으로 가을이 깊어 있었다
투명의 유리 벽 속에 갇힌 가수면(假睡眠) 상태의 스물다섯 살 무렵
볼 수 있다고 말하는 모든 것이 헛된 것 이었다
볼 수 있으되 보이지 않던 절단된 시간의 단면을 넘는 예쁜 이름 가진 계절이
캔버스 위에 임패스토 기법으로 곤죽이 되고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이 아린 순리였던 내 청춘의 한 때, 기별도 없이 그는 가고
철 잃은 흑장미가 가을 끝에서 피고 있었다
그런 내 스물다섯 살 무렵은 늘 허기진 날이 스멀스멀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소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