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캔바스 위의 날들)

그림 이야기-황유엽

소순희 2019. 4. 5. 23:05

 

                         

  그림 이야기-황유엽의 풍경 한 점

 

소와 여인과 가금(닭,오리 등 날 짐승)을 등장시킨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화백의 작품 중에 간혹 풍경이 그려지는데

위 작품도 그중 한 점이다.

산은 넘지 못하고 바다로 가면 북에 두고 온 고향에 갈 수 있을지 모를 의문 부호로 직립한 저녁 무렵의 풍경 하나.

노을이 질 때마다 고향은 더 그립게 화백의 심기를 흔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분단의 장벽은 실로 단절의 실존적 의미를 각인시키고 말았다.

귀향의 길은 가시철조망과 삼엄한 경계의 눈이 살벌해 산허리를 어떻게 넘겠는가.

체념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폐한 모든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듯 한 시대의 슬픔을 표현한

황적색과 암록의 아웃라인이  스스로를 묵인한 한의 결정이지 않았을까!

화백의 그림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와 강렬한 붉은 색조와 질팍한 마티엘이 화면에 가득 찬다.

유독 사람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구성되는 화면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지 않았나 보게 된다.

가족과 생이별은 견디기 힘든 이중의 고역으로 그를 기독교에 귀의하게 만들고

크리스천 예술인으로 창조주의 피조물을 온유와 서정으로 이입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여름이 긴 꼬리를 감추며 사라질 무렵 부슬부슬 가을을 초대하는 비가 내리는 오후 녘,

서교동 작업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던 인 선생(인향봉)은

비에 젖은 채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본다.

거기 실린 고물과 종이박스와 손수레와 할아버지도 모두 낡고 애처롭다.

그중에 눈을 끄는 액자하나가 반쯤 덮여 실려간다 .액자라도 쓸 요량으로 뛰어나가

"할아버지 그 그림 파실 거예요?"

"그럼요. 삼천 원만 주쇼."

"여기, 만 원 드릴게요. 따뜻한 차라도 한 잔 사드세요."

"어유-고맙습니다이."

할아버진 거저 주운 그림을 만 원이나 받고 팔았으니 운수 좋은 거고

인 선생은 만원에 액자 하나 건졌으니 기분 좋고, 이러면 둘 사이에 거래는 흡족히 끝난 셈이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림 이야기하다 그림 사진을 보았다. 예사롭지 않은 어두운 톤의 바다 그림이었다.

싸인을 보자 곧 황유엽 화백의 그림이었고 당시 화백의 그림은 호당 백만 원에 거래되었으니

10호 천만 원의 가치를 지닌 그림이었다.

발견치 못했으면 어느 쓰레기장으로 실려 가 소각되었을 그림 한 점이 다시 빛을 보게 되어 감개무량하다.

이 일이 2009년 이고 일년 후 황유엽 화백은 94세로 타계한다.

 

                                                                                                   2019/소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