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집은 타관에 살다 큰아버지의 타계로 고향으로 이사를 왔고 큰어머니는 무속인으로 세 아들과
어렵사리 살림을 꾸려 나가셨다.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여인이 찾아들었다.
그때 큰형은 중학교에 다니던 때였고 마을에선 드물게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가끔 큰형은 나를 자전거 뒤에 앉혀 동구 밖까지 태워 주곤 했다.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갈 때 마다 나는 형의 등 뒤에서 잦아들듯 한 묘한 기분을 느끼며
형의 허리를 꼭 껴안고 눈을 감았다. 점점 잦아들던 그 기억들을 뒤로하고 수년이 흘렀다.
형은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다 군에 갔고 맹호부대로 월남 파병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중학1학년 그해 가을이었던가 결혼을 했다.
조그맣고 하얀 형수의 얼굴이 얼마나 예뼜는지 모른다.
결혼 선물로 들어온 조그만 그림 한 점이 방문 위에 걸리면서 나는 큰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 그림을 보기 위해서 였다. 6호 정도의 크기였는데 바위 절벽 위에 잘 지어진 정자와 그 아래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돛단배가 조용히 떠 있는 그림이었다.
나는 그 그림을 보며 감상에 빠져 수없이 마음으로 그려보고 지우곤 했다.
언감생심 저 도에 이를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남몰래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그림은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는 상화였다.
그러나 그 그림이 아무 가치없는 장식용 그림일지라도 좀처럼 그림을 대할 수 없었던
시골 소년의 눈에 비춰진 그림 한점이 얼마나 마음을 잡았던가!
지금에와 생각하면 순수했던 한 때의 소망이었고 친구 같은 필요불가결한 아름다움이었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진솔한 언어는 그림으로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화가 필 때/소순희작/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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