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소순희 2007. 12. 17. 10:03

 아부지는 삼 간 흙벽 집을 지으셨다.

지붕은 억새를 베어 말려 이엉을 만들고 높다란 용마루에서 급 경사를 이룬 초가(억새집)를 만들었다.

빗물이나 눈이 오래 머물지 않도록 경사가 심한 지붕은 늘 회색빛으로 햇볕 아래 반짝이기도 했다.

논을 갖지 못한 아부지는 볏짚 대신 잘 자란 억새를 베어 모았던 것이다.

볏짚 지붕은 해마다 걷어내고 다시 입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억새 지붕은

십여 년을 족히 버티었다. 그 켜켜묵은 지붕 속을 파고 한때는 땅벌이 집을 짓고 살았다.

마당을 오가며 몇 번 벌에 쏘인 후로는 살금살금 기다시피 집을 들며 나곤 했다.

그렇다고 집에 불을 질러 태울 수도 없었고 지금처럼 성능 좋은 곤충 박멸 약이 있었던 때도 아니었다.

겨울 처마 밑엔 참새가 주먹만 한 굴을 파서 겨울을 나고 그 시절엔 구렁이도 돌담과 지붕 사이를

넘나들며 살았었다. 새봄엔 강남에서 온 제비가 마루 위 처마에 새끼를 길러 내곤 했다.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려 합창을 하던 새끼들의 붉은 주둥이가 신기했다.

어미는 새끼의 배설물을 물고 집 밖으로 날아가곤 했다. 집안엔 소와 닭, 돼지,염소 그리고

쥐들까지 가족이란 이름으로 동고동락했는지도 모른다.

 

 집은 이제 막 푸르러가는 감나무 사이로 검게 지붕을 드러낸 채 그렇게 꿈꾸는 것처럼 놓여 있었다.

옹색한 흙벽 삼 간 집이었으나 바람과 햇볕은 늘 풍족했다.

뒷집 대밭을  경계로 큰 살구나무가 있었고 봄이면 뒤꼍 장독대 위로 살구꽃이 흰 눈처럼 내리는 날이면

남몰래 몇 번이고 들락거렸다.  그 부드럽고 촉촉하던 한 줌의 꽃들이 살아오는 동안 풍족한 이유로

채워져 왔다.

 

 사립문 밖엔 사철 개울물이 흘렀고 그 찬물엔 가재와 중고기가 눈에 띄게 모여 살았다.

봄밤의 소쩍새는 고즈넉이 온 마을을 새벽까지 울었고, 가끔은 초저녁 부엉이도

뒷산 오리나무 꼭대기에 검게 앉아 울었다.

마을의 집들은 70년대 새마을 사업 운동으로 철거되거나, 지붕이 개량되고 더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부지의 체취가 배어나던 집은 헐리고 이젠 고독 같이 마을 길은 길에서 길로 이어져 있을 뿐이다.

 

 겨울이 오는 안양천을 산책하다 허연 억새꽃을 보며 나는 어린 시절 억새 지붕이었던 고향 집을 그려보며

그 당시 볏짚을 얻지 못한 아부지의 심정과 그 후에 논을 마련하여 흙과 함께 한 생이 진솔한 삶이었다는 걸 새삼 돌아보게 된다. 아부지가 그리운 건 내 나이보다 먼저 가신 그분의 삶이 슬프기 때문이다.

                                                   

                                                                                                       2007/12 소순희

 

                                                                                      

                                                                                                  <안양천에서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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