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이 뽑히는 아픔에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참고 있으면 덥수룩한 머리는
고속도로처럼 허옇게 길이나고 차츰 산판을 한 산 능선의 나무처럼 남은 머리카락은
바리깡(이발기기) 한 번 지나가면 말끔하게 정리가 됐다.
손잡이를 나무 자루로 만든 전정 가위 같은 바리깡은 잘 들지 않아 머리카락을 씹어 뜯어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리를 빼내려고 하고 휴억(나보다 1년 아래인 친구)은 더욱 붙들었다.
이와 똑같이 휴억이 머리를 자를 땐 내가 잡아 주는 게 이발하는 일과였다.
서너 달 만에 한 번씩은 이 일을 치르느라 양지바른 휴억이네 사랑방 가마솥 아궁이 앞은
가끔 우리의 이발관이 된 셈이다. 아재(휴억의 아버지)께선 바리깡을 빌려다
얼룩얼룩 쇠똥 낀 우리의 머리를 단장해주셨다.
쑤세미 같던 머리가 잘리고 뭔가 허전해서 쓸어보면 까슬까슬한 대그빡이 참 좋았었다.
가끔 잘리지 않는 머리카락이 타조의 머리털처럼 듬성듬성 몇 개씩 서 있었고
그걸 다시 잡아 뽑느라 웃곤 했던 지난날도 이제 아득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오래전 일이다.
독산동 골목을 다 누비고 다녀도 이발관이란 이발관은 다 쉬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 꼭 이발 해야 할 처지에 있었고 아침나절 시간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미장원에 간다는 건 꿈도 못 꿀 당시라 이발관만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때 하양 빨강 파랑의 줄무늬가 빌빌거리며 위로 오르는 이발관 표시의 동그란 기둥이 얼마나
기뻤던가! (눈물이 날 뻔함)
지하 계단을 돌돌돌 뛰어 내려가자 작고 통통한 아주머니가
이리 오세요 하고 날 인도 하는데 작은 칸막이 방으로 데리고 가서 의자에 앉으란다.
앉자마자 의자를 뒤로 홱 젖히더니 내 발을 의자 앞 세면대로 올리곤 묻지도 않고
남의 양말을 벗겨 발을 씻어 주는데 은근히 걱정된다.
이발은 해야 하고 이제 와서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한 상태인데 이젠 더 가관이다.
작은 키에 통통하고 유난히 가슴이 큰 아주머니는 안마한다고 하면서 어깨를 토닥이고 주무른다.
그러면서 점점 가슴까지 더듬어 내려오는 사자 머리를 한
아주머니의 손 아귀힘은 어찌나 쎈지 아프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해서 나는 온몸을 뒤틀 듯 하면서
용을 쓰는데 "어디 아프세요?" 한다. 으으~~
(난 하나도 안 좋은데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좋으면서~~라고 할지 모르겠다.)
가슴팍을 안마랍시고 더듬는 아주머니의 큰 가슴이 얼굴을 확 짓누른다.
이건 피할 수도 없고 숨이 막혀 얼굴을 돌려 빠지락거리며 일어서려고 다시 한 번 용을 쓰는데
귀에 대고 속삭인다. "서어비스~해~줄까?" 순간 스치는 막연한 두려움과 안 좋은 생각에
"아,됐습니다." 하고 몸을 틀어 간신히 허리를 세웠다.
"................" (별 재수 없는 놈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아저씨를 불렀고 아저씬 퉁명스럽게 이발을 했다.
이거 큰일이네 엄청 비싸면 어쩌지! 걱정이 앞선다.
그 시절 보통 이발관에선 요금이 4,500원이었는데 얼마를 받으려고 이러나 싶어서다.
주머니엔 딱 만 원 한 장 있는데...
그 후 머리를 감고 있는데 아저씨 누군가에게 큰 소리로 전활 하는데 짜증이 잔뜩 묻어있다.
"어, 우리 아가씨가 시골 갔다 온다 더니 안 와~씨펄! 누구 장사 망치려고 그러나?"
응 그러고 보니 이곳이 그런 곳이었구나, 그리고 아주머니를 내게 보낸 건 꿩 대신 닭이었구나.
햐 ~내가 이런 곳을 와 보다니...나는 속으로 되네이며 울상이 되었다,
그리고 나오면서 조심스레 "어 얼마입니까?" 하자 아저씨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 손톱인지 뭔지를 깎으며
소파에 앉아 만원만 내슈한다.던지다시피 탁자 위에 만 원을 내놓고 급히 계단을 올라와
그 말로만 듣던 상황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떨쳐 버리려고 머리를 쓸어내리며 나는 잰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오며 밝은 햇살에 눈이 부심을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008/소순희
<구로동 풍경/4호/소순희/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