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에게
뉘 부르는 소리에
이 땅의 수줍음
많이도 간직 해 두고
아무도 모르게 속 잎을 피우느냐
살면서 사무치게 그리운 것들
눈감으면
하나 씩
둘 씩
예감처럼 눈 부신 하늘 끝
장도(長島)로 내리는 걸
갈대밭 너머로 바닷새 날 때마다
귀밑 머리 날리던 남해의 계절풍에
사랑은 많아
불면의 예각으로
늦은 새벽잠이 들면
고운 의미로 물드는 단꿈을 보았겠지
편지장마다 새록새록 피어나던
작은 이야기
수줍음 많이도 간직한 채
아무도 모르게
푸른 속 잎을 피우느냐.
87.소순희
갈대밭 사이로 바다를 가고, 언덕을 넘으면 낮은 빨간 지붕과
학교 운동장이 보이던 작은 섬이라고 했다.
소녀는 해풍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그 길을 오갔고 우르르 길을 비키던
조그만 게를 잡기도 하고 갯벌에서 조개를 캐기도 했다.
편지 속 그를 읽으며 나나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던 먼 지난날이었다.
<휴일의 포구/소순희작/94년/Oil on Can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