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이 보이는풍경/강 건너가 신의주입니다/2007/7>
대추나무
소순희
봄바람이 몇 번이나 깡마른 수피를 핥고 간 뒤에도
깊이 숨겨둔 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겨울 가뭄 끝 노을 닮은 붉은 가시에 조부의 느린 시조 가락만
작년 것 그대로 걸려 펄럭이고 있었다
지상의 모든 나무 푸른 하늘에 박혀
침묵의 한 철 마른기침은 박제된 등걸에 고운 기별이더니
눈곱 낀 눈 비비며 대추나무는 가장 늦게 잎을 틔운다
조부의 휜 허리께로 나른한 오후가 감겨
꿈자리 사나운 낮잠끝 오선 같은 가지에
여림 다장조로 나붙는 연둣빛 비린 참새의 혀,
허기진 봄날 며느리 고봉밥 같은 햇볕도 나긋나긋하고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고약한 늙다리 슬픔도
그 나무 아래에선 감당해야 할 호사란 걸 알았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