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J에게(33)-다시 통영항에서

소순희 2008. 7. 8. 23:26

                                                                    <통영항(충무항)/강구만풍경/사진소순희/2008.7.13>

 

                                                                  <통영항(충무항)/강구만풍경/사진소순희/2008.7.13>

 

J. 남 덕유산의 밤을 가르는 여름밤은 유달리 정답습니다. 소나기 소리처럼 묻어오는 개구리울음 하나만으로도 자신을 온통 내어 맡기는 헤픈 밤이 되어버립니다.

불빛 휘황찬란한 통영항의 해안도로를 따라 오솔길 같은 밤길을 달려 민박집에 왔습니다. 마당 좁은 민박집 창밖으로 온 밤 내 파도소리는 지친 영혼의 무게를 훌훌 벗겨 내립니다. 아무도 몰래 한 사흘 마당에 만들어 놓은 흔들 그네에 몸 맡긴 채 저 파도만 보며 지내다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너저분한 일상 잠시 뒤로 밀쳐놓고 남도의 바람 속에 꿈 하나를 소중히 묻습니다.

 

J. 통영항에 다시 왔습니다. 예술인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라 더욱 감개무량한 곳입니다. 화가 중섭이 한때 머물러 작업을 했고,시인 청마와 김춘수가 시를 쓰고, 음악가 윤이상과 소설가 박경리의고향이라 나는 저들의 그 영혼의 숨소리를 듣고픈 까닭도 있습니다.

 

몇 해 전 그 정답던 풍경이 세월 흐름에 편승한 지방 자치제 때문인지 지금은 변해있습니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던 통영항에서도 가장 뛰어난 강구만의 아름답던 산동네의 붉은 지붕과 흰 회벽, 그 아래 올망조망 키 재기를 하던 현대 건축도 나름대로 어울리던 그때였습니다. 그러나 언제 들어섰는지 모를 네모 반듯한 회색건물 하나로 그 속 깊은 감탄을 이제는 접어야겠습니다. 주위 경관과 맞물려 있는 친화적 환경은 고려하지 않고 불협화음을 이룬 사진 속 건물의 감옥같은 위용을 나는 마음 아파합니다. 그 뒷편의 작은 집에 사는 원주민의 조망권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저 위대한 군주는 어떤 사람일까요? 무작정 허가를 내어준 관의 관계자의 그 탁상 행정에 염증을 느낍니다.

붉은 지붕도 이젠 없습니다. 외국의 예를 들자면 기왓장 하나 갈고 싶어도 허가 맡아야 하고 벽 도색 작업도 허가 아래 행해진다는데 무지막지로 뜯고 헤집어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이 나라의 관광정책은 죽은지 오래입니다.

모 TV방송에서 어린 대학생들 시켜 산동네 벽에 유치한 꽃 그림을 그리고 참,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방송인의 유치찬란함에 서글픈 웃음만 남았습니다. 그 서민가옥의 존재가 아름답다고 하기엔 그 내면의 아픔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적절한 보상대책이 마련돼야 제3차산업의 관광자원이 훼손되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나는 이제 그곳엔 갈 맘이 없습니다. 또 하나 마음에 새겨둔 충무항을 그리며...

 

                                                                                 그리운이여 안녕/2008.7.13 /소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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