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지치면...
병섭에게
수분재 아래 꿈결처럼 흐르는
쇠내를 따라 내려가면 거기
푸른 마을 속속이 잠들어 있지
물봉선 붉게 피고 검은 눈 살아 있는
미물들은 이미 청정한 섬진의 한 지류를
생것으로 그어 놓았지
곰살맞은 지명마다 눈물겹게 추억 어린
그곳에 가 보아라,
친구여! 오월 초순에는
저녁놀을 등진 아부지의 휜 등어리에
업히는 산 그림자 논배미마다 들여놓고
풍년초(담배)를 말아 쥔
억센 손가락 사이 실없이
오르던 연기를 아는가 말이다
우리 마음은 진즉 거기 피고 지는데
기특하게도 잘 버텨온
까칠한 인생의 절반도 더 덧없이 아득혀라
친구여! 우리
살다 지치면 가 보자 탯자리 그곳에.
소순희
<사진/소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