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재 이야기 소순희
가을 햇살 아래 푸른 모든 것들이 먼 산부터 붉어질 즈음 뒷골 밤나무 숲은 보기 좋게 알밤이 벌고
이미 쏟아 낸 밤송이는 속을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말라가는 풀에서 잘 익은 밥 냄새처럼 구수한 냄새가 온 산에 가득했다.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가을이었다.
그러니까 6학년 늦가을에 아버지를 도장골 양지에 묻은 지 약 1년이 된 셈이다.
중학교에 어렵사리 입학하고 나는 읍내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에 다녔다.
늘 외로움에 배회하는 날이 많아질 수록 가을은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나는 학교 관사에 사는 기영이와 남원읍(시)내에사는 택규와 남평에 사는
형찬이와 철용이를 데리고 시골집에 갔다.
고남산 자락마다 숲을 이룬 아름드리 밤나무 중에 우리 집 밤나무는 애석하게도 한 그루도 없었다.
우리는 주인 몰래 산을 타고 바람재로 갔다.
붉고 반짝이는 알밤을 쏟아 낸 늙은 밤나무마다 샛노란 잎들이 햇살에 더욱 눈부셨다.
풀섶에서 알밤을 찾아내며 우리는 흐믓한 눈웃음을 치곤 했다.
그러다 더 줍고 싶은 생각에 가지 끝에 매달린 밤송이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투두둑 돌이 지날 때마다 밤송이가 떨어졌다.
정신없이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데 주인집 형들이 저 아래서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산 위로 뛰기 시작했다.
잘록한 산허리를 사람들이 넘다 보니 자연스레 길이 되고 구불구불 그 길이 재가 된 것이다.
산 말랑에서 숨을 몰아쉬며 땀을 식히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이놈들"하고 형 셋이 다가왔다.
우리는 주웠던 밤을 내팽개치고 산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파른 산비탈에 납작 엎드렸다.
그런데 친구들은 계속 산 아래로 노루 새끼 마냥 네 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 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나는 웃음이 나기도 하고 같이 가지 못함에 후회가 됐다.
재너머는 방죽골이고 네 명은 길 끝에서 잡혀 주인집으로 윗옷을 벗긴 채 끌려갔다.
어린 것들이 얼마나 마음 졸이며 끌려갔겠는가!
나는 친구들만 도망치게 하고 숨어버린 자신의 비겁한 행동에 못난 놈이라고
나 자신을 질책했다. 나는 주인집으로 죄인처럼 기어가듯 들어섰다.
마당에 친구들이 훈계를 듣고 있었다. 화가 난 형이 들고 있던 청 윗도리로 나를 후려쳤다.
순간 옷 끝에 달린 쇠 단추가 눈을 사정없이 훑고 지나갔다.
별이 반짝이고 쓰라린 눈에서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이제는 아픔보다 서러움에 흐드득 대고 있는데 땀이 흘러 눈은 더욱 쓰라려 왔다.
일장 훈계를 듣고 집으로 오는내내 괜찮으냐고 위로하는 친구들 말보다 서러움에 얼마나 속이 끓었던가.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그렇게 심하게 했을까? 어린 것들이 밤 좀 땄다고 좀 나무라면 될 걸 왜 그리 심하게 했을까 지금까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속 깊이에서 그 형님이 화난 얼굴로 나를 후려치던 그 서러웠던 게 풀리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연락이 두절 된 그 친구들도 가을이면 그 추억을 떠 올릴까?
이젠 추억으로 남아 가끔은 어린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곤한다.
그 후 15~6년 즈음 뒷골 밤나무 밭을 가로질러 광주에서 대구로 88고속 도로가 닦이게 되었다.
많은 산소가 이장을 해야 했고 아부지 산소도 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볕 좋은 어느 날 도장골 아버지 산소 봉분을 허물고 집안 어르신들과 관이 누운 자리를 파고들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청년의 나를 사로잡았다. 허무한게 인생이라던가!
아버지의 흔적은 굵은 유골 몇 점으로 실뿌리에 휩싸인채 황토속에 고스란히 남아 47세 중년에 가신
그 가을을 슬프게 했다.
방죽골 양지로 이장을 하기위해 창호지에 수습한 유골을 지게에 지고 나 홀로 유년의 추억이 있던 바람재로 들어섰다.
어디선가 구슬픈 산비둘기 울음소리 들려오고 길은 풀이 우거져 지워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부르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몇 번이고 굴절 된 길에 멈춰서서 눈물을 찍어내며 바람재를 넘었다.
아버지와 나는 늦여름 이른 아침 밤나무 숲에가서 나무 밑둥에 돋아난 하얀 밤나무 버섯을 망태기에 따서 돌아오곤했다.
그 이듬해 5학년 때엔 나 혼자서 그 나무아래 어김없이 돋아난 버섯을 따 왔고, 어머니는 맛나게 국을 끓여주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자연속에 사는 법 하나 하나를 내가 익히도록 했지만 그나마 정지된 일이 되고말았다.
아버지의 지게 위 풀더미엔 머루 덩굴이며 새알처럼 옹기종기 붉게 빛나던 알밤 몇 알이 지금도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건 아버지가 내게 준 어린 날의 소중한 정신유산이다.
2012 가을에 소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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