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어머니의 유품

소순희 2018. 6. 24. 17:34

 

                                                <어머니의 그릇/2017/소순희작/유화>

 

                              <조각난 그릇을 붙여 놓은 모습>

 

 

 

                                   

                 어머니의 유품

                                                              소순희

 

열 두어 쪽으로 조각난 질그릇이 베란다 창가에 나뒹굴었다.

바람에 빨래건조대가 넘어지면서 떨어뜨려 깨어지고 말았다

어머니의 유품이랍시고 보관해 왔던 간장을 나눠 담던 작은 그릇이다.

볼품없고 하찮은 것일지언정 내게는 귀중한 어머니의 유품이다.

열 살 무렵 네 살 남동생(외삼촌)을 남기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큰집에 얹혀살면서 두 남매가 받은 구박과 눈칫밥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고 어린 날을 가끔 회상하곤 했다.

배고파하는 네 살 동생을 장독대 뒤로 불러, 숨겨온 눌은밥을 떠먹이며 얼마나 마음졸였을까

깡마른 동생이 마루 끝에 앉아 방아깨비처럼 깐닥깐닥 발을 흔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하시던

어머니의 기억은 소멸되고 짧은 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1949년 그러니까 6.25전쟁이 발발하기 한 해 전에 열여섯 살 처자의 입 하나 덜자고 선택한

외가 어른들의 그 무지한 출가 관이 어쩌면 유일한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도 절도 없는 아버지의 가난은 또 다른 절망을 안겨 왔다고 미루어 짐작한다.

남의 집 방 한 칸을 얻어 살면서 한 평 땅도 없이 하루하루 사는 게 목숨 연명이었으리라.

그 시대에 거듭되는 빈곤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란 요원한 소원이었고

남겨진 것은 눈 감지 못하는 생명의 질긴 연이었다.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큰 누님을 낳았다. 그리고 작은 누님을 낳고, 나를 낳고 여동생을 낳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어느 여름날로 기억한다. 

어머니는 산달이 되어 읍내 병원으로 가다 버스 안에서 사산아를 출산했다.

가족과 인연이 되지 못한 막내 남자 동생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가정을 꾸려가며

비로소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최소 단위인 가정을 갖게 된 어머니는 얼마나 애틋했을까.

아무것도 없는 살림을 일구며 하나둘 기쁨으로 장만하는  질그릇(장독)을 애지중지하며

막연한 희망을 품고 행복한 날을 꿈꾸었을 어머니의 심정을 지금에 와서 가늠해본다.

어머니는 목화를 심어 무명베를 짜고, 삼(대마)을 심어 틈틈이 삼베도 짰다.

소쩍새 우는 봄밤이 이슥토록 어머니는 한 섞인 푸념 조의 노래를 읊조리며

짤깍짤깍 피륙을 짜나갔다. 끌 신을 앞으로 당길 때마다 용두머리는 수많은 날줄을 들어 올렸다.

베틀에 앉아 엇갈린 날줄 사이로 북을 옮겨 씨실을 넣어가며 바디를 잡아당겨 치면  촘촘한 고운 면이 조금씩 늘어났다.

수 없는 반복으로 면을 짜나가다 도투마리를 넘기면 날 줄 사이에서 뱁댕이가 떨어져 쌓였다.

그렇게 짜인 피륙은 장날 읍내에 내다 팔고 생필품을 사곤 했다.

어머니는 당신이 손수 짠 삼베로 어느 해 윤달에 수의를 지어 시렁 위 석작에 차곡차곡 보관했다.

그리고 83세 겨울 그 옷을 입고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 그 많던 손때묻은 어머니의 유품은 온데간데없고 남은 건 질그릇 뿐이니 어찌 귀하지 않으랴. 

 

나는, 어머니가 손수 산 60년도 넘었을 조각난 질그릇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 붙여가는 동안

불현듯 어머니의 처절했던 삶이 그려져 눈물이 났다.

간장을 나눠 담아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였을 가난한 부엌 살림에 가족 입을 생각하며, 알랑달랑 바빴을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   

연약한 체구로 최선을 다해 살아냈을 나의 어머니,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면 안 됐을 어려운 생활에

몸에 밴 절약 정신은 본향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습관이 되어 버려 자식들의 불만을 들어주지 못했다.

풍족한 현재의 날을 누리지도 못하고 가신 어머니가 어느 하룬들 잊히겠는가.

 

찰흙을 빚어 서민의 도구를 만들고 한 시대의 시련을 견뎌내며

삶을 공유한 도공의 정신에도 올곧은 인간미가 있음을 나는 안다. 

이 소박한 그릇 하나에서 고향 집 대숲 바람 소리와 환하게 뒤란을 밝혀주던 살구꽃 향이

어머니 미소처럼 번져오는 유월 밤엔 고즈넉이 울어주던 소쩍새 울음이 진정 그립다. 

                                                                           

                                                                                        2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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