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꾀꼬리

소순희 2018. 5. 16. 01:11

                꾀꼬리

 

그날도 아이들은 마을 앞 소나무 숲에서 놀다 무료해지면 새 집을 찾아 이마에 손바닥을 펴 햇볕을 가리며 키 큰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터를 잡고 마을이 형성될 때 심어진 수령이 몇백 년 됨직한 느티나무와 백여 그루의 소나무가 숲을 이룬 곳은 

늘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어르신들은 느티나무아래서 여름 더위를 피했다.

도랑을 하나 건너면 참나무(도토리나무)가 또 다른 초록 군집으로 숲을 이룬 채 고즈넉이 소나무

숲과는 다른 빛깔로 부드럽게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가을에 도토리를 따기 위해 큰 돌로 나무의 허리를 쳐서 푹 파인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 여간 안쓰러운 것이 아니다.

그곳엔 봄이면 말벌과 사슴벌레와 풍뎅이가 몰려와 수액을 먹느라 영역싸움이 일어나곤 했다.

우리는 고무신을 벗어 말벌을 낚아채 빙빙 돌리다 땅에 내동댕이치면 허리를 구푸려 바들바들 떨며 기절한 말벌의 검은 독침을 빼고 장난감 삼아 놀기도 하고 사슴벌레를 잡아 싸움도 시키고 풍뎅이를 잡아 다리를 자르고 마당 쓸기 놀이도 했다.

그 몹쓸 잔인한 놀이가 그들과 친숙한 유년의 한때 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꾀꼬리는 여름 철새로 우리나라에서 번식하고 가을이 오면서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노란색의 새다.

높다란 나무의 수평으로 자란 두갈래로 나뉜 가지 아래로 나무나 풀뿌리, 더러는 비닐까지 물어다 엮듯이 둥지를 만든다.

번식기에 내는 아름다운 노래는 숲속 새들의 화음으로 멋진 하모니를 이뤘다. 

오학년 초여름 우리들은 유월의 숲에서 새 집을 발견하고선 새끼 새를 내려다 길러야겠다는 무모한 생각으로

높은 도토리 나무를 끌어 안고 오르기 시작했다. 몇몇 아이들이 입을 헤 벌리고 올려다보는 모습이 발아래 난쟁이들처럼 보였다.

그땐 호기심과 아이들이 오르지 못한 나무를 오른다는 것에 의기양양했다.

근 10여 미터의 원줄기에서 뻗어 나간 가지의 둥지 가까이 오르자 어미 새가 머리위로 공격을 해왔다.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의 필사적인 공격을 피해 가지에 손을 뻗는 순간 찌지직 하고 나뭇가지가 꺾이고 말았다.

새끼새 세마리는 땅으로 떨어지고 나는 꺾인 가지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고 바둥거렸다.

섬유질이 풍부한 나무라 가지가 뚝 부러지지 않고 꺾인채 끊어지지 않는게 천운이었다.

아이들의 탄성이 꿈결처럼 들렸고 나는 힘이 쭉 빠진 채 벌벌 떨면서 간신히 나무를 내려왔다.

새끼 새는 물론 죽었고, (나는 살아 아픈 추억하나 끄적인다.)

그후몇날을 빈둥지 곁에서 날다  어미는 눈물을 흘리며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다.

이 막연한 호기심이나 잘 못 된 의식으로 죽어간 많은 곤충이나 새들에게 용서를 빈다.

지금도 고향의 숲속엔 꾀꼬리를 비롯해 여러 종의 새들이 포란하고 있을 것임을 믿는다.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가 이 초하엔 더욱 절실히 마음을 헤집어 놓음은 그 시절의 아린 추억 하나 있기 때문이다.

 

                                                                                                        2016 소순희

                                                                                                       < 사진/박종길님>

 

                                                                                    <늪/소순희작/2001/유화/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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