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그 시절엔 이런 일도 있었다.

소순희 2018. 10. 4. 21:29

                                                                                                <2002년 시사금융지 표지화>



                             그 시절엔 이런 일도있었다.


                                                          소순희


"얘들아, 이게 뭔지 아니?"

 자그마한 비닐봉투를 들고 종례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이 집중하자 "이게 채변 봉투라는거다.

내일 학교 올 때 여기에 변을 조금 넣어 오는 거다. 알겠지!"

"네에~"

초등학교 4 학년때 일이다. 50 여명의 한 반 뿐인 시골 학교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하여

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연례행사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소장에 기생한 많은 종류의 기생충은 복통과 구토를 일으키고 영양분을 빼앗아가

핼쑥한 시골 아이들의 핏기 없는 얼굴과 마른버짐이 피는 희끗희끗한 볼은 언제나 초췌했다.

그도 그럴것이 채마밭마다 인분을 주고 키웠으니 기생충에 감염되는 건 시간문제였으리라.


다음날 변 봉투를 내야 하는데 미처 준비하지 못한 고학년 아이들은 친구들 변을 숨어서

나눠 담기도하고 어떤 아이는 학교길에서 개똥을 담아가기도 했다.

한 달 후 검사 결과 회충과 편충, 촌충에 감염된 각 반 아이들의 명단과

하얀 알약이 교실에 도착했고, 간혹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기생충에 감염됐다는 아이도 있었는데

개똥 검사였으리라. 

선생님께서 주전자에 물을 준비하고, 혹여 버랄까봐  그 자리에서

입에 열 알 정도의 동그란 알약을 털어 넣고 물로 삼키도록 했다.

약을 넘기지 못한 아이는 입안에서 굴러다녔다. 끝내 먹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 자 이젠 변을 보고 몇 마리 나왔는지 나무 꼬챙이로 세어 와야 한다. 알겠지?"

"예~~에에 ㅋ"

그 뒷날 일요일이었고 우리는 산동 앞 냇가에서 놀다 1년 선배ㅇㅇ 이 배가 아프다며 자갈밭에 볼일을 보았다.

"야,회충약 먹은 사람 몇 마리 나왔는지 세어 오라했는데 ..." 끙

희끄무레한 뭉텅이가 쏟아져 나왔다. 우리들은 막대기를 찾아 휘적거려 세기 시작했다.

"한 마리,두 마리....마흔 다섯 마리~~~ 크아, 이이게 뱃 속에 들어 있었다고...욱"

사실이었다.늘 핏기 없는 누우런 얼굴을 하고 다녔던 ㅇㅇ이 그 후부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참,그러고보니 어지간히 못 살았던 70년대초의 일이다.


2017년 판문점으로 귀순한 북한병사 수술중(아주대 이국종교수 집도) 소장에 수 백마리의 회충에

감염된 것을 보면 북한의 취약한 환경과 식량난을 짐작할 수 있지 않는가.아마도 남한의 60~70년대

생활 방식인듯 싶다. 이젠 그 시절 어렵던 한 시절이 꿈만 같으니 세상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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