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어느 해 봄날에

소순희 2018. 12. 14. 22:15

   

                                                         <소순희씀/무괴아심/ 나의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게하라.>

                  

       

                        어느 해 봄 날에

                                                                      소순희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서며 끼이익 쇳소리가 신경을 건드린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어느 역에서 일이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건장한 남자 셋이 열차에 오르더니

통로에 버티고 서서 다소 위압적인 분위기로 수없이 해 보았을 법한 말들을 쏟아낸다.

 

 "여행 중인데 불편을 드려서 대단히 죗쏭합니다. 자, 여러분께 행운의 기회를 드리고자

여기서 몇 말씀 드리는것은, 다름 아니라 한국 광학기기의 선구자적 사명으로

최첨단 카메라를 만드는 회사로써 신제품을 선전 하기 위해서 올라온 임직원 입니다.

오늘 행운권을 드리고 당첨되신 분께만 수고비 쪼로 단돈 4만 원에 카메라 한 대를 드리오니

써 보시고 널리 선전 좀 해 주십사 하고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솨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번호가 쓰인 작은 행운권을 나눠준다.

나는 20번이 쓰인 행운권을 받았다.

"자, 지금부터 추첨을 통해 최고급 카메라를 드립니다. "

한 남자가 원통에 손을 넣고 휘젓더니 번호를 읊어댄다.

"7번, 16번, 5번, 22번, 35번. 20번. 2번..."번호를 부를 때마다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한 남자는 카메라를 가져다 안기며 빨리 돈을 내라는 투로 바쁘다.

내 좌석 앞의 아가씨가 흥분과 떨림으로 핸드백에서 돈을 꺼내고 카메라를 받는다.

나는 당첨 번호를 쥐고 있으면서 손을 들지 않았다.그때 한 남자가 저벅저벅 내 앞에 오더니

"당첨되지 않았어요?" 하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아, 저는 안 살래요"

"아니. 이 좋은 기횐데 행운을 박차시네에~"

"전 카메라 있어요."

" 이 양반아, 없어서 사라고 그래?  행운이니깐 사야쥐~~"

양미간을 찌푸리며 시비쪼로 말하다 홱 돌아선다.

 

 창밖에 나른한 봄기운이 너울대는 30여 년 전의 일이다. 

그해 4만 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다.

그리고 그 카메라는 시중에서도 만원이면 살 수 있는 저질 카메라인 걸 나는 안다.

그 남자들의 수법은 얼굴을 보고 어리숙한 사람들에게 행운 표를 나눠주고 뽑는 것도 안다

나도 어리숙한 사람으로 보여 그렇게 한 그네들의 행동에 약간의 화가 났지만

내 모습이 그렇게 보인 걸 어떡하겠는가!

때 묻은 장사 수법이나 겁박주는 일들로 선량한 사람들을 얼마나 울렸을까 생각하니 기분이 언짢다.

야바위꾼들이나 하는 못된 짓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어딘가에서 오늘도 순박한 사람들을 속이고 있진 않을까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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