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숙자

소순희 2020. 11. 29. 21:00

   

아침 볕/10호/송치숙님소장/Oil on Canvas

                       

                          숙자

 

 그날도 쉬는 시간에 교실에선 숙자를 둘러싼 아이들이 연필깎이 칼로 삐져낸 모과를 얻어 씹고 있었다.

교실 안에 꽉 찬 모과 향이 코끝에 와 닿는 가을은 유리창 속으로 햇볕이 투명하게 걸러지고 있었다.

나도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었지만 내게는 모과 한쪽도 쥐어지지 않았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나는 처음으로 노랗고 커다란 과일 모과를 처음 보았다.

얼마나 탐스럽고 먹음직하게 생겼던가! 몇 명의 반 애들에게 잘라주고 남은 모과를 몰래 잘라 입에 넣어 보았다.

맛이라곤 텁텁하고 시큼한 나무껍질 씹는 기분이라 뱉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모과의 맛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숙자는 내 짝이었다. 작은 체구와 유난히 흰 얼굴에 박힌 눈은 가늘게 일자로 누운 게 인상적이다.

약간의 광대뼈가 도드라지고 웃을 때는 입가 어딘가에 보조개가 살짝 드러났다.

목소리는 하이소프라노로 날카로웠다.

부끄럼 잘 타는 나는 2학년 내내 숙자와 몇 마디 나눠본 것 같지 않다.

6학년 동안 한 반으로 지내왔지만, 여자아이들하곤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쉬는 시간이면 축구공이 없는 가난한 시골 학교의 운동장에선 주먹만 한 고무공을 차며 신나게 놀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아랫마을 숙자네 대문 앞 울타리엔 커다란 모과나무가 있었고, 해마다 잎이 지고 난 후에도 노란 열매를 탐스럽게 품고 있었다.

 

 졸업 후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6년 동안 다녔던 학교가 점점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각자의 처소에서 삶을 익혀 가는데 세월은 거침없이 흘렀다.

기회균등 보장이나 공정한 대립 관계에서 멀어진 가난한 대물림에 합류한 무력함은 늘 양지와 음지로 나뉘었다.

그리고 어느 해 동창 모임에서 풍문으로 듣는 숙자 소식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문득 숙자의 웃는 흰 얼굴이 스쳐 갔다.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몇 해가 흘렀고, 어느 가을인가 화실 전화벨이 울렸다.

미국에서 숙자가 왔다는 소식과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들 몇몇이 만나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참석치 못했다. 며칠 후 숙자는 출국했다고 소식만 들었다.

 

 모과 정물화를 그릴 때마다 나는 엊그제 일처럼 소상히 떠 올려지는 추억 하나가  그림 속에 녹아 그 풋풋하던 어린 소년의 소박하고 깨끗한 시절로 끌어가곤 한다.

지금도 폐교가 된 국민학교 시절 2학년 교실에 모과 향 나고,

고향 숙자네 울타리 모과나무가  가을마다 크고 노란 열매를 품고 있을까?

                                                                                                           

                                                                                  소순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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