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내 유년의 10 페이지 중에서

소순희 2020. 7. 29. 08:12

장수읍을 벗어나와 남원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금강과 섬진강으로 분수령을 이루는 해발 539m의 수분재가 있다.

그리고 그 옆 산비탈로 하얀 산길이 낙엽송 사이를 돌아가는 게 가보지 않는 곳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마주 오는 차를 비켜서지 못할 정도의 소로를 따라 차를 몰다 보면 길 밑으로 발이 간지러울 정도의 협곡이 굽이굽이 급경사를 이룬다.

한참을 달려 그 길 끝에 가 보면 가지런히 눈에 들어오는 20 여호의 오래된 마을 하나가 큰 산에 에워싸여 요새처럼 박혀있다. 누가 언제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을까?

아마 몰락한 딸깍발이 선비나 아님 벼슬이 싫어 낙향한 어느 분이 숨어들어 초야에 묻혀 심신을 달래며

그곳을 벗어나지 않고 뼈를 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그 풍경을 스케치하며 마을 밑으로 펼쳐진 다랑논 몇 개로 자급자족할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남향의 작은 집들이 버섯처럼 정겹게 피어 있으나 몇 가구의 빈집이 말해주듯 더 나은 삶을 찾아

외지로 떠난 것에 대한 씁쓸한 현실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곳이 다릿골(달골)이라는 산 마을이다.

 

그러니까 내가 10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이른 봄꽃이 지고 난 후 연초록 잎들이 연한 그늘을 만들 즈음 나는 휴억과 놀다 무료해지면 마당과 울타리 가에 꽃을 많이 심어 놓은 선예네 집 뒤꼍에서 놀곤 했다.

그날도 거기서 놀다 뒷밭에서 장독대가 있는 곳으로 뛰어내리다 두더지가 파고 지나간 곳에 발이 박히면서 나는 나동그라졌고 그만 팔이 깔리면서 탈골이 되었다 .

퉁퉁 부어오르는 팔을 감당치 못하고 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아픔보다 아버지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더 두려웠었다.

그 무렵 늘 위험한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고 주의를 듣기 일쑤였기 때문에 그 부분이 마음을 옥죄었다.

아슴아슴 젖어 드는 저녁 빛을 지고 사람들은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밥 먹는 자리에서 왼손으로 서툴게 숟갈을 든 나를 발견한 아버진 왜 왼손 질이냐고 나무랐다.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듣던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고 그게 더욱 불안하게 했었다.

온 밤 내 아려오는 팔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꿈인 듯 생시인 듯 아침이 왔다.

 

보자기로 팔을 감싸 목에 걸고 나는 어머니와 불손재라는 이웃동네 째보 할아버지네 집으로 가서 뼈를 맞춘다고 죽지 않을 만큼 팔을 비틀고 잡아당기기를 반복했다.

지금 같으면 정형외과에 가서 X-선 촬영하고 깁스하면 되는데 그 무지하고 가난한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으리라.

2 주가 지나도 아픔은 계속되었고 어머니는 애가 타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비포장 길 흙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빨간 테를 두른 버스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쑥 순이 우북하게 자란 가장자리로 비켜서서 먼지가 개기를 기다리면 매캐한 흙먼지 속에서도 물큰한 풀냄새가 훅 키쳐 오곤 했다.

그 늦봄 나는 어머니와 삼십 여리의 비포장 길을 휘적휘적 걸어 용하게도 뼈를 잘 맞춘다는 할아버지가 사는 동네를 물어물어 찾아가고 있었다.

수분재를 시점으로 발원한 섬진강 지류인 맑은 시내를 따라 덧대어진 흰 가르마 같은 19번 지방 국도로 삐질삐질 배어나는 땀을 훔치며 가자니 길은 경사가 더 해진다.

 

그래도 병신 만들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성화에 난 죄인처럼 꾹 참고 갈 수밖에 없었다.

다릿골이란 산중을 물어 어렵사리 길을 찾아 찻길에서 산 중턱으로 실뱀 같은 길을 다시 오르는데 뻐꾸기 울음이 구슬프다

 

"이놈아, 에미 속 엥간히 썩여라 잉, 나도 못 할 일이고 너도 못 할 일이제 참말로 어찌야쓰까잉"

어머니는 눈물인지 땀인지를 훔치며 나를 앞세워 걸었다.

"................."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산 중턱에 작은 집 몇 채가 쓰러질 듯 서 있고 큰 바위가 점잖게 버티고 앉아있다.

지나는 길에 마주친 아주머니께 그 할아버지를 묻자

"아, 그 양반 아까 본께 쩌그 논에서 일허고 있던디 요리 올라가 보이쑈, 잉" 하고 손을 가리킨다.

조금 더 가자 다랑논에서 일을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허리를 펴며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이미 안 다는 듯

논물에 손을 휘휘 저어 씻고 나오시며 팽 소리를 내며 코를 풀어 바위에 쓱쓱 닦고 밀짚모자를 벗어

부채인 양 훌훌 부치며 논둑으로 나오더니

 

"쯧쯧 이놈아, 조심헤야제 ~어디 보자."

 

"아, 요것이 메~칠이 지났는데도 안 낫네요. 어쩌야 쓰까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리듯 한다.

너무 아파 팔을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한 상태인지라 조심하기 그지없는데 할아버지는 내 팔을 잡더니

갑자기 위로 아래로 옆으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마구 제쳐 버린다.

나는 너무 아파 숨이 멎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며

 

" 놔. 이 새꺄. 아구 나 죽이네~ "하며 악을 써 댔다.

 

"허허 이눔아 그래도 벵신 안 되는게 좋제 다 되얏다 흠."

 

자식의 아파하는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는 얼마나 애간장이 녹았을까.

난 할아버지 손에서 놓여나자 냅다 도망치듯 뛰어 내려가다 돌아보니 어머니는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댄다.

팔이 퉁퉁 부어오르며 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리고 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가며 어머니는 찔레순 하나를 꺾어 주셨다. 그러나 입 안에서 향긋한 풋내가 확 퍼지는 걸 깊게 느낄 수는 없었다.

 

 내 마음속엔 참으로 고마운 그 작달막한 할아버지가 늘 조심헤야제 하고 빙그레 웃고 계신데 살아생전

한 번 찾아뵙지 못했음으로 끝내 마음 한 켠이 아린 게 봄에는 더욱 그렇다.

                                                                                                                           <2006/소순희>

 

 

                     <다릿골의 봄/20호 소순희/2006>

 

                            <다릿골의 봄 소순희 작 20호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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