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그해 여름

소순희 2021. 8. 19. 22:45

                                  <전원/8호/Oil Painting>

                                   <저, 건너/Oil Painting>
         

                       그해 여름

                                                  소순희


사 학년 여름방학도 거의 끝 무렵에 걸려 있었고 매미 소리에 묻혀 버린 여름 오후를

후텁지근한 기운에 숨이 막힐 듯했다.
이따금 매미 소리가 그칠 때마다 마을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텃밭의 푸성귀며

돌담을 타고 오른 호박잎이 염천 볕 아래 축 늘어졌다.

 "아따, 왜 이리 덥다냐 썩을 놈의 날씨가 사람 죽이네! 잉"

마루에서 어머니 무릎을 베고  낮잠에 설핏 빠져들면  어머니는 노랗게 콩기름 먹인 부채로

달라붙는 파리를 부채질로 탁탁 쫓아 주셨고, 부채 바람에 비릿한 콩기름 냄새가 났다.
그러다가 어머니도 밀려드는 졸음에 못 이겨 텃밭의 처지는 채소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하루 일과 중 소먹이 꼴을 베는 것이 내게 맡겨진 일이었고

내가 하지 않으면 식구 중 누군가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므로

책임감에 젖어 살았던 터라 시늉이라도 내야 할 판이었다.

그즈음 검게 그을린 얼굴에 마른 버즘이 피고

머리는 항상 빡빡머리로 피부와 머리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되어

눈만 유독 허옇게 드러나던 사 학년 무렵이 앞뒤 생각 없이 날뛰는

뒷산 올 토깽이 마냥 세상모르고 살던 내 생의 황금기였는지도 모른다.

늘 휴억과 함께 한 날들이 많았지만

그날따라 순성이와 일 년 선배인 용식이와 육 학년 승호 형이 나를 불러냈고

우리들은 고남산 자락 햇대골로 접어들었다.
햇대골은 뽕밭이 많았다.

뽕잎을 따면 하얀 즙액이 나왔고 그것을 소가 먹으면 좋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해가며

쇠꼴 대신 뽕잎을 따곤 했다.

 그런데 그 뽕밭 고랑에 들어서니  먹음직스러운 참외가 예쁜 모양새로 잎사귀 밑에서

달디 단 향을 풍기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집에서 가꾸지 않으면 참외나 수박을 먹어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빛내며 무언의 합의를 했다.

그것이 우리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망태기에 참외를 따 담았다.  

그리고 옆 비암산(뱀산)으로 올라가 둘러앉아 참외를 아 먹으려는데

산 밑에서 얼굴 두 개가 쏙 올라왔다.

" 난 뉘 집 자식들인지 다 알아 이놈들아!"

밭 주인 할머니와 손자인 형이었다.
뒤도 돌아볼 겨를 없이 산비탈로 내리뛰었다. 발바닥에선 땀이나 

검정 고무신이 미끄러져 뒤집히고, 가시밭인지 억새밭인지 모를 험한 산밑으로

놀란 노루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우리는 방죽골로 도망쳐서 큰 소나무 아래 모여 숨을 돌렸다.

까맣게 탄 다리는 긁히고 엎어질 때 살갗이 찢어져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 것쯤이야 황토 한 줌으로 쓱 문지르면 그만이었다.

그때 소나무 사이를 비 먹은 바람이 쏴아 지나가고 후두둑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번개가 산을 한번 핥고 지나가면 뒤이어 천둥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 야, 비올때 큰 나무 아래 있으면 벼락 맞는대. 젠장"

금방이라도 뒤통수에 벼락이 내리 꽂힐 것 같았다.

서둘러 소나무 밑을 빗겨 나와 빗속에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허기진 배에 옷이 착 달라붙어 오들오들 속이 다 떨렸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겨우 마을에 와 돌담 너머로 집안을 기웃거리며 잠시 망설였다.

괜찮을까, 아무도 모르겠지, 죄책감이 무겁게 내려앉았지만, 용기를 내어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머니가 달려 나와 수수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종아리에 매질을 했다.

" 왜, 시키지 않는 짓거리를 허고 댕겨 이눔아 잉,뒈져라 뒈져"  

이미 밭 주인 할머니가 다녀가셨던 것이다.

아프지도 않는데 엄살을 피우며 방에서 나오지도 못 한 채

엉엉 우는 척하며 나는 뒷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름 저녁이 깃들고 있었다.

하늘엔 별이 하나둘 돋아나고 마당에선 멍석을 펴고 감자를 넣어 끓인 수제비를 먹고 있었다.

얘야, 저녁 먹어라. 아버지가 부르셨고 뒤이어 누나가 계속 불러 댔다 .

나는 미안하기도 하고 겁도 나서 고집을 피고 있었다.

한 번만 더 부르면 나가야지 하고 있는데 더 이상 부르지 않았고 상은 치워지고 말았다.

그날 밤 다행히 불어터진 수제비를 훔쳐먹을 수 있었던 게 지금도 맛있는 것으로 남아있다.

그런 다음날 밤부터 밭 주인집 형에게 불려 나가 그 여름밤마다 모기에게 헌혈을해가며

연설을 들어야했고, 우리가 구축했던 튼튼한 서리 모임의 성이 무너져 내림을 절감했다.

방학 끝 즈음까지 댓가를 치르고서야 마음 놓고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지금에와 생각 하면 그때 들키기를 잘했지 싶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할머니와 까무잡잡한 형이 가끔 보고 싶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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