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씨앗

소순희 2021. 11. 1. 22:09





     


                            
                                                씨앗
                                                                                          소순희


 쌓인 눈이 녹고 찬 바람이 불고 지나간 버스 정류장 철제 울타리를 타고 오른 마르고 비틀린
나팔꽃 덩굴에 동그랗게 달린 통을 만져보니 까만 씨앗이 툭 튀어나온다.
겨울 견디는 씨앗의 눈이 귀여워 여나므개 통을 터뜨려 꽃씨를 받아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우연히 만져지는 우둘투둘 단단한 것이 마음 쓰여 꺼내 보니 나팔꽃 씨였다.
봄이 오면 심으려고 종이봉투에 넣어 나팔꽃 씨라고 써 놓았다.
그 작은 것이 잠에서 깨어나는 적합한 필요조건인 햇볕, 온도, 수분을 주면
휴면 상태에서 생장 활동으로 변이가 시작되면서 종피를 뚫고 밖으로 나오는데 이것을 발아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나온 2천 년 전 볍씨에서 싹이 돋았다는 이야기가 보도된 바 있다.
또한 중국 동한 시대 2천 년 전 고묘 에서 발견된 볍씨도 발아해 고고학적으로 지대한 관심을 표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도리 구석기 유적지에서 출토된 세계 최고 15,000년 전의 볍씨는
인간과 밀접한 집단 생활의 근본적 의식주를 주장한 가장 귀중한 부분임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하나의 씨를 분해해서 현대 과학으로 씨앗의 모양이나 향기, 그 속의 영양분은 똑같이 만들 수 있다지만
다만 생명을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은 생명을 주관하는 신의 영역이므로 인간의 한계의 커트라인을 분명히 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신의 경외에 범접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관리 차원에서 생명의 귀함과 존엄을 다루고 지켜야 함은 인간에게 다스리라는 권한을 준
신의 명령이므로 근본 원리의 질서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얼마 전 화실 창가 화분에 묻어 둔 씨앗이 뾰록 싹을 내밀었다.
무심했던 나도 들며 나며 창가를 몇 번씩이나 돌아보게 된다.
양쪽으로 노란 떡잎이 나오고 본잎이 나오고 덩굴손이 뻗기 시작하였다.
적당히 물 주며 관심 가져주는 사이 그 사소한 생명에도 마음이 쓰인다.
어느 날 아침 동그랗게 웃는 꽃을 보고 환호작약하는 나의 소심한 마음을 온종일 기분 좋게 한다.
그 연약한 덩굴에서 꽃을 피워내고 자연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생명이 참, 예쁘다. 
매일 들여다보는 것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다가 차츰 시들해진 늦여름
둥근 열매를 맺은 씨앗 통을 보고 흠칫 놀랐다.
아! 저렇게 대를 이어가는구나! 창조주의 섭리에 나지막한 감탄사가 입안에서 몇 번이고 맴돌았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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