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4호F/Oil Painting>
복숭아의 추억
소순희
여름이 오면 유독 복숭아의 추억이 그 시절로 나를 끌어간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해 봄에 집에서 40여 리의 시내 중학교에 나는 어렵사리 입학 했다.
6학년 가을 아버지가 산에 드셨고, 마을 어른들은 상급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 와중에 몇몇 분은 그래도 중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친구들은 하숙집으로 들고 나는 시내에 방 하나를 얻어 혼자 자취를 했다.
저녁이면 연탄불을 갈고, 아침이면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일주일 내내 김치 한 가지만으로도 내겐 성찬의 축복이었다.
중학교도 못 갈 형편에 내겐 감지덕지했다.
주눅 든 날을 교정의 구름 같은 벚꽃과 학교 울타리 너머로 굉음을 내며 언덕을 기어오르는
서울로 가는 기차를 보며 조금씩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고 위로가 되어 주었다.
첫 여름 방학 즈음 어머니가 뽀얗게 잘 익은 커다란 복숭아를 사가지고 자취방에 오셨다.
나는 덥석 깨물었고 단물이 입안 가득 고여왔다.
그렇게 맛나게 먹는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이 젖어 있었다.
지상에서 가장 맛나던 그 복숭아와 어머니의 젖은 눈이
50년이 지난 일인데 오늘처럼 선연히 남아 내 심성이 거칠어 질려 하면
조용히 타이르듯 가라앉혀주곤 한다.
2021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