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그리고 현실

직박구리의 겨울

소순희 2023. 1. 12. 06:42

                                                  <사진 홍기원기자>

                                       <직박구리가 쪼아 먹은 사과>

                     

 

                                      직박구리의 겨울       

                                                                                 

 

사과 한 쪽이 상처가 나고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자 아내는 버리려고 골라 두었다.

장수 누님이 보내준 사과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고 보니 아깝지만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마을 주변을 둘러싼 과수원이 붉은 열매를 내보이는 늦가을엔 풍요로움에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누님의 밭 가에도 사과나무 몇 그루가 해마다 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그중 잘 익은 사과를 보내 준 누님의 열일곱 살 적  붉은 볼이 떠 올랐다.

 

 겨울은 새들에게도 시련의 계절이다.

인가 가까이 날아든 배고픈 조수들의 먹이 찾는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사과를 집어 들고

출근하며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소나무 가지 사이에 사과를 올려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눈아래 뺨에 갈색 무늬와 회색의 가슴팍에 하얀 점이 박힌 까만 눈의 직박구리가

사과를 쪼아 먹고 있음을 보았다.

직박구리는 까치와 과수원 과일을 쪼는 유해조수로 미움을 받는 텃새이다.

 

재작년 아파트 마당 나무 아래 주차한 검정색 승용차 지붕과 유리문과 보닛 위에 새똥이 하얗다.

어둑어둑한 퇴근길에 보니 그 나무에  한 이십여 마리의 직박구리가 가지마다 매달려

시끌벅적하게 지저귀며 콩처럼 생긴 열매를 따 먹고 싼 똥이다.

"저런, 뉘 차인지 참 안됐다." 하고 다음 날 아침 교회 가려고 나와보니 아내가 주차해 둔 우리 차였다.

백여 군데 희끗희끗 도색을 해놨다.

"아, 이를 어쩐댜.이쒸~~~" 

그러나 어쩌랴 먹고 싸는 게 살아 있는 것들의 이치인데...

 

아무리 닦아도 끈적거린 새똥은 지지 않았다.

그냥 교회로 갔다. 보는 사람마다 웃음을 참느라 쿡쿡거렸다.

클리너 두통을 다 써도 지지 않아 자동세차장을 두 번이나 통과하고 나머지는 겨우 닦아냈다.

지금은 그 나무 아래 절대로 주차하지 않는다.

그래도 새들의 노래나 맑은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땅한 놀이시설이나 장난감이 없던 유년 시절 자연 속에 함께 살던 작은 짐승이나

새, 곤충은 시골 아이들에게 목숨을 내맡긴 채 살아갔다.

단지 장난삼아 그들을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아갔던 철 없던 유년 시절을

어쩔 수 없던 일 이었다고 합리화해 본들 공인된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귀엽고 신비로워 길러보고 싶은 막연한 기대도 한몫했던 시절이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영장류의 사람이 하위의 그들을 이제는 보호하고 길러야 할 때이다.

그래서 이 땅에 생육하고 공생하는 섭리로 자연의 활력인 기쁨을 누리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소순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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