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과 아이
소순희
여섯 살 봄 지금 생각하면 꿈속 같다.
무엇인가 땅에서 흐물흐물 피어오르는 봄날, 하늘에선 노고지리가 지저굴지저굴 노래하며
공중 한 자리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러한 봄날은 여섯 살 내게 천국 같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용식이와 나는 자갈투성이 범벌 들판에서 놀다 여기저기 돋아난 풀섶에
솜털 보송한 할미꽃이 고개 숙인 채 피어 있는 걸 보았다.
어린 마음에 꽃이 예쁘다고 생각되어 들춰 본 꽃 속은 진자줏빛 속살과 동그랗게 원을 그린
노린 꽃술이 곰실거렸다. 나는 꽃줄기를 잡고 뽑다시피 몇 줄기를 끊어냈다.
손에서 금방 축 늘어졌다. 저만치서 자갈을 던지며 놀고 있던 용식이가 가까이 오더니
"너, 그 꽃 뭣 할려고 꺼껀냐?"
"응, 집에가서 꽃병에 꼬자 놀라고..."
"그 꽃 꺼끄면 할매 귀신이 잡아간대. 우리 할매가 그러던디..."
용식이 할머니는 하얀 머리를 하고 늘 주름이 깊은 눈가엔 눈물이 꼬물꼬물 젖어 있었다.
어린 마음에 인자함보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늘 가까이 가지 못했다.
나는 잔뜩 겁을 먹고 이제 울상이 되어 볼멘소리로
"그먼 물에다 떤져불먼 되지 머"
"할매 귀신은 물속에도 있대!" 더 숨이 막힐 지경으로 옥죄어왔다.
"그먼 돌팍으로 눌러 노면 되지"
"그걸 못 차즐까 귀신이"
"...."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멘탈붕괴 상태로 울상이 되어 집으로 가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걱정거리를 안고 넘긴 하루는 어린 내게 지워진 무거운 짐이었다.
꺾은 꽃을 처리하지 못 한 채 들고 다니다 어떻게 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때부터 형성된 소심증은 내게 일종의 고행이었고, 죄가 내 자신을 옭아매는 근원이라는 걸
일찌기 체험한 셈이다.
그 뒤 할매 귀신은 내게 아무 해코지도 하지 않았고 커 가면서 소소한 죄는 스스로 용서하며
자연스레 초등학생이 되었다.
어느 여름 범벌 불모지에 꽃 지고 난 후 흰 머리칼 같은 씨줄을 휘날리는 할미꽃 군집을 보며
세상에나 저렇게 많은 할미꽃이 있다니 감탄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저세상 사람이 된 용식이 할머니의 흰 머리와 눈가에 고인 눈물이 할미꽃만 보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