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이웃 사람들이 한꺼번에 소리쳤다.
"살려주소서!"
그들은 벌떡 일어나 일 년 내내 먹을 건포도를 널어놓은 포도원을 향해 뿔뿔이 달려갔다.
그들이 달려가는 동안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구름이 검은 삼단처럼 치렁치렁 늘어졌고
폭우가 줄기차게 퍼부었다. 하수도가 넘쳤고 길바닥에서 물이 강처럼
흘렀다.
포도밭마다 구슬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사람들은 저주 했고 나중에는 포도밭 올리브나무 뒤에서 통곡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멀거니 서서 일 년 내 고생해
거두어 반쯤 말린 포도가 한 아름씩 휩쓸려 내려가는 광경을 보았다.
통곡 소리가 커졌고 여자가 무릎까지 차는 물로 뛰어들어가 건포도를
조금이라도 건지려고 기를 썼다.
다른 여자들은 두건을 벗어 던지고 길가에 서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나는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나타내는지 보려고 집으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흐느껴 울고 있을까? 욕설을 퍼붓고 고함을 지를까? 포도 말리는 곳을
지나다 보니
우리 포도는 하나도 남지를 않았다.
나는 문간에 서서 수염을 깨물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어머니가 그 뒤에서 훌쩍훌쩍
울었다.
"아버지,우리포도가 다 없어졌어요." 내가 소리쳤다.
"시끄럽다. 우리는 없어지지 않았어!"
나는 그 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나는 그 순간이 내가 삶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위대한 교훈 노릇을 했다고 믿는다. 나는 욕이나 애원도 하지 않고 울지도 않으면서
문간에 꼼짝 않고 침착하게 서 있던 아버지의 모습을
항상 기억했다.
거기 서서 재난을 지켜보며 모든 사람 가운데 아버지 혼자만이 인간의 위엄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중에서 >
비피해가 심한 여름, 억장이 무너지는 그 아픔을 누가 함께하랴. 남아있는 것 곧 그것이 희망 일진대
다시 시작하는 그대 영혼에 위로
있으라.
.소순희작 항구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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