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관악의 끝자락 앞산에도 투명한 초가을 햇볕은 곤두박질 치듯 내립니다.
그 짙푸르던 녹음도 차츰 가을물이 들어가는 시월을 눈앞에 두고있습니다.
사계(四季)가 저리도 시간의 흐름에 걸 맞게 표현되는 섭리를 보며
나는 안양에 내려 온 후 창밖의 변화를 민감하게 끌어 들입니다.
그것은 시야에 다가오는 산이라는 요지부동의 확고한 틀 안에서 더디지만
뚜렷이 나뉘어지는 계절의 머리들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심히 흐르는 안양천 물도 나날이 빛깔이 달라보이는 것은 계절이 바뀌는
그 쓸쓸함의 뒷모습 같습니다.
가을이 오는 이 때 쯤이면 나는 서럽도록 고운 고향의 지명(地名)들을
하나하나 꼽아봅니다. 뒷골,숯꾼양지,방죽골,도장골 그리고 아랫들, 바람재,
머밭골,햇대골,붓땅골,산지당,비얌산,건들백이,가랫들, 돌백이,명밭골,잿논,
창덕암,조리골,남산골,소쿠리테안,아아! 범벌,보또랑,고수바위...
이 모두가 고남산에서 골골이 흘러내린 구릉이며 작은 야산이고 들녘입니다.
그리고 산자락에 숨겨둔 작은 절하나와 거대한 암벽의 힌 물줄기
어느곳 하나 내 유년의 추억이 새겨져있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중학1학년가을, 철용이 형찬이 택구와 기영이와 나는 밤 서리를하다 잡혀서
혼나고 눈물을 쏟으며 서럽던 바람재 이야기와, 산비둘기,새매,때까치,할미새의
알을 찾던 휴억과 순성이 순덕이와의 뒷골 밤나무 숲 추억과 겨울 눈속에서
토끼를 쫒던 그 산자락과 나무와 나무 사이를나는 하늘다람쥐를 잡던 일,
이름도 모르는 석수장이 할아버지의 추억도, 아버지의 삭은 유골을 만지며 서럽고 아프던
도장골의 양지녘. 묘를 이장하기 위해 유골을 지고 바람재를 넘어 방죽골로 가던
그해 가을 깊이를 나는 가늠하지 못 합니다.
나무하러 다니던 산골골이 휴억과 용식이 익수,그리고 따스한 숯꾼양지의
황토와 그 포근한 빛깔도 잊을수 없습니다.
누나와 나뭇짐을 지고오다 처박혀 울며 다시 나뭇짐을 매던 절골 그 가파르던 산 길.
아,아,나는 이러한 모든 일들이 가을이면 소상히도 떠 오는걸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내 감성들을 키워내고 훈련된 고향의 서럽고 아프고 고왔던 추억들이 몽유병처럼 도지면
그 곳을 쏘다니다 문득 멀리 와 있는 내 중년의 나이를 헤집다 깜박 속은 것 같은
지난 날을 생각하면 이 가을을 쉬이 넘길 수 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운이여 안녕2006가을. 소순희
1969년 봄
고남산864m
귀로 100호 소순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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