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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꽃

아까시꽃 소순희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 있어 돌아보면 흰 구름처럼 피어나는 아까시꽃 한창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 없이 오월은 또 흔연히 마음을 붙잡습니다 시절을 두고 나는 모질지 못한 까닭에 당신, 그 조붓한 어깨에 내리는 그늘 한 자락도 봄의 숨결로 받습니다 이 봄도 그리운이여 안녕 * 아카시아는 잘 못 표기된 나무라네요 아까시가 맞다네요.

시와 사랑 2023.05.02

도원동-3

도원동-3 소순희 가난한 달동네 집마다 피는 꽃은 더 맑아 보였다 뒷배경이 허접한 봄날도 그곳에선 그다지 서럽지 않아 맘 편해지는 사는 맛이 났다 앵두꽃 피어 환한 좁은 마당집 노파가 해바라기로 앉아있는 오래된 나무 의자는 늘 반짝였다 그럴 때마다 골목을 돌아가던 봄바람도 느적느적 돌아와 앵두나무꽃 어루만지며 웃고 있었다 바람난 도미 이모가 돌아오던 봄날 용산역에서 신촌 쪽으로 가던 석탄 운반 열차가 유별나게 그르릉 거렸다 도원동에 봄이오면 행복은 그리 멀지 않는 곳에서 고개넘이를 기웃대다 꽃처럼 화들짝 피어났다 잊혀진 것들이 다시 돌아와 꿈꾸는 달동네 도원동

시와 사랑 2023.04.25

할미꽃과 아이

할미꽃과 아이 소순희 여섯 살 봄 지금 생각하면 꿈속 같다. 무엇인가 땅에서 흐물흐물 피어오르는 봄날, 하늘에선 노고지리가 지저굴지저굴 노래하며 공중 한 자리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러한 봄날은 여섯 살 내게 천국 같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용식이와 나는 자갈투성이 범벌 들판에서 놀다 여기저기 돋아난 풀섶에 솜털 보송한 할미꽃이 고개 숙인 채 피어 있는 걸 보았다. 어린 마음에 꽃이 예쁘다고 생각되어 들춰 본 꽃 속은 진자줏빛 속살과 동그랗게 원을 그린 노린 꽃술이 곰실거렸다. 나는 꽃줄기를 잡고 뽑다시피 몇 줄기를 끊어냈다. 손에서 금방 축 늘어졌다. 저만치서 자갈을 던지며 놀고 있던 용식이가 가까이 오더니 "너, 그 꽃 뭣 할려고 꺼껀냐?" "응, 집에가서 꽃병에 꼬자 놀라고..." "그 꽃 꺼끄면 ..

자작나무 숲에서

자작나무 숲에서 소순희 죽렴지맥의 마차령을 넘으며 직립 보행하다 멈춰선 나무를 보았다 흰 목질부를 드러낸 자작의 겨울이 이다지도 깊이 숨어든 까닭을 아는가고 숲속에드니 옛적 산 몇 번지에 전입한 멧비둘기가 고요 속으로 추락한다 해발 칠백고지의 눈 덮인 산중 하강의 엄숙함이 발목 잡는 자작 숲에는 나그네 겨울 하루 두고 온 서울의 온정이 눈물겨워 나무 끝 하늘만 바라보다가 몸통 끌어안고 귀 대어보니 아득하게 비어버린 내 유년의 성장통을 자작 숲도 겨우내 앓고 있었다 죽렴지맥 (竹廉枝脈) 백두대간 함백산 만항재에서 석항천 북쪽 죽렴산 곰봉(1016),고고산 능암덕산을 지나 동강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40km의 산줄기를 죽렴지맥이라한다

시와 사랑 202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