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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꿈처럼

2023,11,11 Sketch 가을 깊어 기온이 급 강하했다. 나뭇잎 지기 전 남겨야할 한 해의 가을이다. 볕이 좋은 날이다. 한순간 꿈처럼 소순희 저 색깔 고운 가을녘이면 님아 죽음보다 깊은 잠도 헛되지 않으리 결국은 너와 나 황혼의 가을 속에 눕는 일이 그다지 부끄럽지 않거니와 목멘 기다림도 구석기 유물처럼 무딘 족쇄의 구속인 걸 지상의 살아 있는 것이 숨죽여 침묵할 때 가만히 침잠하는 몹쓸 놈의 잠도 귓바퀴를 돌다 쉬이 거두어들이는 그늘 속에 다시 빈손으로 접는 긴 산 그림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점에서 서로 다른 뜻도 기어이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허망한 바람 같은 것 아니더냐 사랑도 한갓 생의 추임새로 신명 나더니 한순간 꿈처럼 지나온 세월 앞에 온순해지네 아,아 몰락함도 어차피 시린 너..

시와 사랑 2023.11.11

그 찻집에 가서

그 찻집에 가서 소순희 대추차 잘 다린다는 창 넓은 그 찻집에 가서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한나절 안개 젖는 산 실루엣 배경에 시 하나 묻어 두고 올까 파초도 시들어 가는 문밖 풍경이나 끄적이다 올까 문득 여기까지 와 버린 가을 길도 없는 계절을 찾아온 저 무수한 흔적들에 경의를 표함은 그저 바라보며 마음 내주어 감탄할 일 뿐이다 2023

시와 사랑 2023.11.05

다시, 가을

다시, 가을 소순희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이지만 해마다 다른 의미로 전달되는 또 한 해 가을이다. 멀미 나도록 짙푸른 푸른 거북등 같던 숲도 어느새 그 왕성함을 내려놓았다. 바라보는 산마다 오색으로 흘러내린 능선과 골짜기는 천연 비단결이다. 지구의 자전축 기울기로 인한 태양의 남중 고도로 변화되는 계절의 섭리를 신께서 주관하심이 나이 들어 가면서 더 절실히 새겨진다. 지루해질 때쯤 변화를 끌어내는 그 은총을 어이 감사치 않을 수 있으랴! 스물다섯 무렵 처음 북한산 뒤쪽 풍경을 접하고부터 해마다 그곳을 찾게됨이 30여 년이 넘었으니 지루할 만도 한데 볼수록 감회가 새롭다. 북한산 사기막골에서 바라본 인수봉과 숨은벽 그리고 백운대는 거대한 암벽처럼 버티고 있음이 남성적이다. 송추방향으로 좀 더 북향하면 도봉의..

가을 안부

가을 안부 소순희 사랑하는 이여! 가을볕 찬란히 눈부시다 잘 있느냐고 안부를 묻지만 꿈결 같은 날은 또 저렇게 속절없이 지고 우리는 이 가을 어디서 만날 것인가 붉은 색깔로 타오르는 맨드라미처럼 정녕 이 가을 속 알 수 없구나 내 삶이 느슨해질 때 곰삭은 가을 한쪽으로 다시 팽팽해지는 필연의 계절 나, 너로 인해 붉게 피가 잘 돌아 정신 맑은 가을이다 사랑하는 이여! 이 가을 잘 있느냐고

시와 사랑 2023.10.20

코스모스 길 어머니

코스모스 길 어머니 소순희 어느 하룬들 어머니 잊힌 날 있을까! 추석 무렵이면 더욱 생각나는 어머니, 내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슬픈 추억 하나 있다. 코스모스 핀 길을 보면 더욱 그렇다. 농투성이 되지 말라고 등 떠밀던 봄날, 먼지일던 길로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손 흔들던 46세 어머니. 나는 그렇게 어머니 곁을 떠나 열두 갈래로 뻗은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문득 4학년 가을, 논에서 아부지일을 돕다 퍼질러 앉아 바라 본 고남산. 그 산줄기로 흘러내린 가을빛이 뒷골 밤나무 숲을 노랗게 물들이며 비단결처럼 고울 때 나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 하나를 새겼다. 몇 해가 흘렀다. 차츰 절망이라는 것도 살이 되어 가는 어떤 개인적인 사유의 깊이를 속앓이로 감내해 나갔다. 그..

카테고리 없음 2023.10.05

도깨비바늘

도깨비바늘 소순희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다 바짓가랑이에 붙어 집까지 따라온 도깨비바늘의 검은 눈을 보았다 올곧게도 바늘을 꽂아 동행하며 어딘가로 멀리 떠나 일가를 이루고 싶은 한해살이풀로 긴 여름 견뎌오며 품어 온 새끼들 오죽하면 타인의 몸 빌려 퍼뜨리고 싶었으랴 이 악문 씨앗들 뜯어내며 눈물이나 울타리 가에 고이 묻어주었다 아버지도 청천 하늘 우러러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곳에 우리를 슬어놓고 떠나셨다 속수무책이던 세월에 도깨비바늘처럼 붙어산 어린것들의 귀에 징그러운 바람 소리 얼마였더냐 그래도 몸 부려 동행하는 오늘이 희망이라고 아무도 모르게 속 깊이 묻어주었다 2013 (월간 모던포엠 2014, 3월호 수록) 도깨비바늘 Spanish needle 국화과에 속하는 일년생초. 인도와 중국, 말레이시아 등이..

시와 사랑 2023.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