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소순희
별빛 들판을 걷는 순례자여
성 야고보의 길을 따라 그대 발길 평화로워
지는 해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구나
며칠째 비워 둔 집에 우편물이 쌓이고
온종일 햇볕만 놀다 갔는지 측백나무잎 반짝인다
발자국 쌓인 흙길은 언덕을 끌어가느라 숨 가쁘게 밀밭 사이를
가로지른다
유월의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볕 아래 포도꽃 향기 출렁이자
힘겹던 마음의 짐도 살가워지고, 가는 길 외롭지 않겠네
걷고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 야위고 힘없는 것들에 대해 나란히 어깨를 겯는 침묵의 일정은
마음 밖 일들까지 소상히 기록하네
또 하루해는 머리 위에 타오르고 몇백 킬로미터의 길이 열린다
굳은살 박인 발바닥에 채이는 죄였던 일들을 딛고 가는 순례자여
견디고 돌아오라는 간절함이 하늘에 닿는구나
저기 저 순례자에게 구름 기둥을 세워주시고 발아래 쉬게 하소서
머나먼 산티아고
그 길 다 걸으면 발톱 새로 나나요?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