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지코지에서
제주바다
섭지코지에 서면
발아래 미끄러지는 바다
그 바다
몇 천 년 삭여온 고독의 몸부림에
억장 무너지는 바다
그 포효를 볼 것이다
해안선을 훑고 가는
해조음의 서북풍
그 바다에
붙일 수식어는 더 없다
망망대해의 싯푸른 시름도
여기서는
살갑게 젖어드는 몸짓 인데
누가 위이고 아래인가
가진자도 자랑이 되지 않는
무욕의 땅에서
무슨 영화 누리자고 마음 쓰는가
바닷새도 검게 외론
섭지코지의 늙은 바위처럼
한 번쯤 그렇게
해조음의 서북풍에 흔들리며
외롭게 서볼 일이다.
2002/소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