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살아온 날이 당신의 이름 있어 부족한 한쪽의 삶이 채워집니다.
서울 도심에서 독산동으로 흘러들어 온 것은 아무 연고도 없었고 익숙한 지역도 아니었지요.
그저 발길 닿는 대로의 정착한 곳이었지. 돌아보면 지나쳐 온 삶 자체가 불행했거나
행복한 것도 없는 무덤덤한 날들 같지만, 주님을 만나고 교회 지체들을 만나 하나님을 따라
사는 은혜의 인도 하심이었노라고 봅니다.
독산동에서 산 햇수가 헤아려 보면 20여 년이 훌쩍 지났고 그곳에서 정욱이와 유성이가
태어나 자란 그들의 모토가 된 서울의 외곽지였네요.
나는 그때 20대 후반, 결혼관이나 사회성이 확립되지 않았고 다만 만남이 좋아 무작정 결혼한
철없던 시절이었지. 솔직히 앞으로 펼쳐질 처절한 삶의 연속을 간파하거나 그 걸 헤쳐나갈
그 무엇도 지니고 있지 못했던 천둥벌거숭이 같은 시절이었지요.
더군다나 그림이 경제적 빈곤의 대명사로 줄곧 각인된 세월 앞에서 당신은 그래도
한 올의 희망을 짜내며 견뎌 왔는지도 모릅니다.
가진 것 없어도 사랑 하나면 족하다는 건 많은 부분에서 사랑이라는 걸 무색케 하는 독소 같은 것임을
알았을땐 주변 사람들의 삶에서도 드러나는 별리의 아픔을 보아왔지요.
그러나 그 어려운 시절의 날들을 참아 낸 건 내게서 얻은 성실함이라고 가끔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용기가 됐다는 걸 이제 고백합니다.
주님을 몰랐다면 우린 수십 번을 헤어질 막막한 사연 앞에 서곤 했지요.
그때마다 우릴 다시 결속시켜 준 건 주님의 인도였고 인내하라는 천명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이 많았고 당신 맘 아프게 한 것이 수없이 많았지. 그때마다
눈물로 기도하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내 못남을 한탄하며 내적 치유의 말씀인
성경을 떠 올리곤 했지요.
하나님은 네 아내의 눈물방울을 세고 계신다는 그 뜻을 이제 조금 깨닫습니다.
정욱이를 임신하고 유난히 입덧이 심해 먹지 못해 체중이 줄고 나약해진 당신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함이 늘 후회로 남습니다.
그냥 우리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였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그 신혼에
우린 그 흔한 냉장고며 선풍기 하나 없이 몇 해 여름을 참아냈지요.
지금 생각하면 무지 같은 일들이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쓴 인생의 단면을 섭렵했네요.
그나마 너그럽고 호탕한 남자라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나에 대해 잘 참아준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세들어 사는 집의 방 한 칸을 다시 세 얻어 살면서 당신 눈물 나게 했던 기억들이 마음 아픕니다.
다 열거하자면 자존심 무너져 언급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복숭아 이야기를 그림으로 하고 싶은 건 언젠가 그때 당신의 마음을 함뿍 적셔오던
그 빛깔과 향기 때문에 나는 꼭 한번 그리고 싶어진 까닭입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 기억이 나를 가만 두지 않네요.
정욱이가 태어나기 2개월 전 어느 여름날 당신은 골목시장에서 크고 고운 복숭아를 사서
먹지 못하고 향미네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고 화실로 전화를했고 나를 기다리는 그 무더운
여름날도 당신에겐 그 복숭아 한 개로 즐거웠겠지요.
내가 집에 들어선 그때 환한 복숭앗빛 같던 당신은 냉장고를 열었고 그 속엔 과일이라곤 없었지요
그 집 조카 녀석들이 먹어 버린 뒤 허탈한 맘으로 눈물은 글썽이며 몇 번이나 냉장고를 열어
확인하던 당신의 그 모습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하고 있지.
나는 내 삶이 곤고해지거나 무기력할 때마다 그 사소 하지만 애정어린 날들의 기억때문에
마음을 추스르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걸 잘 압니다.
이제 그러할 일 없는데 지금은 그때 그 복숭아 맛이 안 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랑합니다.당신...
2007/소순희
<칠월이오면.../4호/소순희작/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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