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아름드리 밤나무 사이로 눈부시게 흰 햇볕이 한아름씩 쏟아지고 있었다.
'뚝딱 뚝딱 뚝 뚝...'
돌을 쪼는 정소리만 규칙적으로 뒷골 밤나무 숲을 울리고 이따금 숲에서 나는 새소리만 간간히 다른 소리로 귓가를 맴돌다 가곤 했다.
그 외엔 물소리는 일상이듯 바위와 숲을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예닐곱살 쯤의 일이다. 마을 뒷골엔 검푸른 이끼와 돌버즘이 핀 화강암이 많은 까닭에 돌절구며 돌확, 댓돌등을 다듬는 석수장이 할아버지의 일 터 였다.
정확히 어느 곳에 사시는 분인지 연세도 이름도 모르는 할아버지는 늘 밀짚 모자에 삼베 적삼을 입고 얼굴 어느 곳인지 검은 점이 팥알 만하게 있었다. 바라 볼 때 마다 그 점은 나의 시선을 빼앗곤 했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할아버지는 돌깍는 일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휴억(빈지게님)네 사랑방에 숙소를 정하고 아침이면 무딘 정을 풀무불에 달궈내어 두들기곤 했다.
잘 달궈진 정의 끝부분 부터 하얗고 노랗고 벌겋게 변하는 모습이 참 곱다고 생각했다. 집게로 집어 물에 '치익...치이익...' 담금질을 하고 나선 마당에 던져 놓으면 푸르스름한 보랏빛으로
뾰쪽하게 잘 다듬어진 정은 마치 새로운 도구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그 정을 만져 보며 참 용하다는 생각을 했고 석수장이 할아버지가 서민들의 삶의 도구를 만드는
장인임을 알 수 있었다.
정과 망치를 망태기에 담고 뒷골로 향하면 나도 곧 잘 따라 나서곤 했다.
석수장이 할아버지는 과묵하기가 바위 같았다. 거의 말이 없었고 다만, 큰 바위를 쪼갤때 작은 홈을 파고 쐐기 정을 박고 "얘야, 저리 물러서라.." 하곤 큰 해머로 내려치면 바위는 보기좋게 둘로 나뉘어 졌다.
나는 그것 들을 보다가 지루 해지면 가재도 잡고 때론 까무룩 잠이 들다가도 정소리에 깨어 나곤 했다.
그리고 나도 크면 석수장이가 되어야겠노라고 야무진 꿈을 가져보았다.
지금은 아름드리 밤나무가 베어진지 오래고 신품종으로 대체시켜 하늘을 가리던 숲은 볼 수 없다.
그때만해도 우리들은 어느 밤나무가 올밤이고 알이 굵은지 쫙 꿰고 있었다. 물론 주인이 있었지만
크게 혼나거나 밤을 땄다고해서 보상을 해 준 적은 없다.
밤나무 숲엔 산비둘기며 매, 꾀꼬리, 때까치등의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키웠냈다.
우리들은 그것들을 잡으려고 앞산의 올토깽이마냥 위험천만한 것도 모르고 나무 위로 산으로 날뛰고 다녔다. 아찔하다.
유감...
나는 기독인이다.
어느 산 바위 절벽에 두둑두둑 부조(릴리프)로 새겨진 보살상이나 석불(마애불)에 정체불명의 사람들에의해 오물을 뒤집어 쓰고 페인트칠을 당하는 얘기들을 간간히 듣는다. 참 유치하기 이를데 없다.
그것도 문화유산이라면 문화유산인데. 이목구비가 수려하지 않고 그저 뭉툭한 코와 실눈과 헤~ 벌어진 입 모습 에서 다정 다감함을 느끼지 않는가. 그것이 우리의 모습과 흡사한 부드러움의 이미지로 다가서는 건 친근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또한 불국사 석가탑이나 다보탑 외에 석탑들을 볼 때 체감율에 의한 균형미가 얼마나 아름답고 단아한가? 그리고 석굴암 본존불의 그윽히 감은 눈과 보일듯 말듯한 미소와 부드럽게 흘러 내린 어깨 선과 옷 결, 적당히 돋은 가슴과 짧지만 힘있는 팔과 가지런한 손가락을 보라!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대리석 작품이나 근대 로댕의 작품에 견주어 무엇이 부족한가.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부수거나 다른 방법으로 대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단군상의 목을 자르는 것도 그렇다.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조각으로 보면 될 것이다.
거기에 물리적 힘과 숨어서 파괴 한다는 것은 우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고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다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회개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도리이지 않을까.
사람들이 어떤 형상을 만들어 세우지 않는 다고 해서 하나님께로 모두가 돌아 오고 상을 세운 다고 기독인이 돌아서서 우상 섬기기를 즐겨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본다.
그저 이땅에 세워진 것들이 마음 다해 만든 장인정신의 조각품이라면 예술 창작의 근본으로 여겨 감상의 즐거움을 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끝내 지켜야할 유산은 그 끝 없는 아카페 사랑으로 날 구원하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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