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J에게(39)-한 그루 나무가 사라지다.

소순희 2009. 7. 4. 17:23

J.에게~

사철 골목을 오가며 보아 온 오래된 가죽나무(참죽나무) 한 그루가 사라졌습니다.

봄에 예쁜 속잎을 피우고 꽃도 피워 내더니 무성한 잎새를 드리우던 골목길에

휑한 느낌이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주차장을 만들런지 콘크리트 마당을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길과 경계에 심어진 그 나무가 주는 의미는 알게 모르게 길가는 사람에게 크게 작용했던 게 분명합니다.

그 나무가 사라진 도회지의 삭막함에 여름볕이 더 뜨거워 보입니다.

그 나무가 자라기까진 30여 년 정도의 세월을 지켜 냈을 터인데 무지막지로 베어 버린

인간들의 심성은 조그만 이익에 눈 먼 자들 같아 마음이 씁슬합니다.

 

어머니는 고향집 담밑 가죽나무의 새순을 따서 데친다음 양념한 찹쌀 풀을 발라 말려서

보내주시곤 했습니다. 어린시절 먹어 본 나물의 일종인 참죽의 그 독특한 향이 귀하게 식탁 한 자리를

차지하곤 했습니다.그러나 올 봄엔 어머니의 병환으로 고향집 가죽나무는 첫 잎부터

마주나기 성엽으로 피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독산동에 살 때 어린이 놀이터에 큰 아카시아나무가 있었습니다.

봄이면 향기를 인근에  실어다 주고 어린이들에겐 그늘이 되어 주던 큰 나무였는데

어느 날 정비 한답시고 싹둑  잘라버린 후 축대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나무를 심었는데 예전의 운치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생각없이 펼쳐지는 구청 혹은 동사무소의 무성의한 탁상행정에 왜그리 섭섭했던지요.

독일에선 도로 공사중에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다칠까봐 나무를 온통 판자로 감싼 채

공사 하는 걸 보고 그들의 선진의식에 감탄했습니다.

주변의 변화에 이제는 마음이 쓰입니다. 더욱이 삭막함에서 오는 이유야 더 할 나위 없겠지요.

칠월입니다. 무성한 푸른 잎새와 더불어 여름이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합니다.

건강히 지내시기를...

 

                                                                              그리운이여 안녕`2009/7/소순희

 

                                                                                       <강변의 여름/20호/소순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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